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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적폐와 정반대의 길을 가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04 17:24

수정 2017.04.04 17:24

[여의나루] 적폐와 정반대의 길을 가라

대통령 선거가 이제 불과 한 달여 남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의 여파가 아직도 미치는 가운데 치러지는 대선이다. 이른바 보수세력이 아무리 애를 써도 지리멸렬함을 수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거 야권 인물 중 대통령이 나오는 건 거의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야권이 소리 높여 외치는 적폐청산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여론 조사상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집권 시 적폐청산을 위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청산의 대상인 적폐와 청산의 방법이 무엇일지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잘 모르겠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새 정권의 적폐청산은 주로 처벌과 배제로 모아지곤 한다. 이른바 과거 정권의 부역자를 색출하고, 관련자를 처벌하고, 임기가 남은 기관장을 교체한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자리를 정권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사람이 채우는 게 상례이다. 문제는 그런 식의 적폐청산이 또 다른 형태의 적폐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정권이 보수와 진보로 바뀔 때마다 적폐청산을 되풀이한다면 국가적 자산과 노하우를 축적할 시간이 있을 턱이 없다. 물론 과거의 문제점은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적폐청산 방법은 그 적폐와 반대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이 구속되어 있다. 문 후보는 "그 밖에 많은 관련자들을 상대로 확실히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확실한 책임'을 묻기 위해 또 다른 편 가르기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과거 진보정권에서 목격한 바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원칙을 확실히 관철시키는 것이다.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지원에서 배제하는 블랙리스트에 분노를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런 치졸한 적폐를 없애려면 누구 편이냐에 따라 지원 여부가 결정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튼튼히 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우리 편에 지원이 더 가도록 하거나 우리 사람을 심기 위해 애쓴다면 그간의 적폐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재벌개혁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경우 가장 좋은 정부의 관여는 적극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다. 헌법에 있는 대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법을 제대로 지키도록 감독만 하면 된다. 녹색 혹은 창조 경제를 하라, 문화융성을 지원하라,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라는 식의 적극적인 주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저런 청탁성 발언을 주고받음으로써 유착을 의심케 하는 기업인 독대는 금기가 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개적으로 만나 당당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을 마련하면 된다.

낙하산 인사도 청산대상인 적폐 중 하나이다. 비단 박근혜정권만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있었던 게 아니다. 후보 시절 거대한 캠프를 운영하고, 관여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청와대가 무리한 인사를 거듭하는 것을 정권마다 보아왔다. 당연하게 여겨오던 이런 적폐를 이번에야말로 청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역시 적폐와 반대로 하면 된다. 캠프 인사들에게 감사장 하나 전하고 식사 정도 하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청산해야 한다. 그러자면 청와대가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장관에게 해당 부처와 관련 공기업의 인사권을 과감하게 이양함으로써 아예 캠프와 대통령 이름을 팔 여지를 없애야 한다. 정권마다 문제가 되풀이되는 무능한 폴리페서, 무리한 논공행상 얘기만 나오지 않아도 절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다.
적폐청산? 적폐대로 하지만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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