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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인터넷은행, 꿈과 현실 사이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04 17:25

수정 2017.04.04 17:25

[차장칼럼] 인터넷은행, 꿈과 현실 사이

#. 마음에 꼭 드는 스커트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가격표를 뒤집어 본다. 32만원. 잠시 서서 고민을 한다. 도저히 포기하긴 어렵겠다는 판단이 선다. 체념하고 스마트폰을 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은행에 물어볼 수밖에 없다.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메시지를 보낸다. "A백화점, B브랜드, 32만원 스커트 살 수 있나요." 휴대폰 속 금융비서는 한동안 말이 없다. 이제 고민은 그의 몫이다.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현재 잔액은 148만원, 이달 아직 결제하지 않은 아들 학원비, 아파트 관리비 지급건이 남아있다고 한다. 다음 월급일까지는 아직 열흘이 남았다. 나의 성실한 금융비서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지출 내역을 종합해보니 이달 쓸 수 있는 여력은 5만여원이다. 그가 드디어 답을 내놓는다. "A백화점 5% 할인하는 X카드로, 무이자 6개월 결제 가능합니다. B브랜드 포인트 2000원 사용 가능합니다."

이런 은행을 꿈꾼 적이 있었다. 지난 2015년 늦가을, 인터넷전문은행에 출사표를 던진 3곳 후보 대표들의 인터뷰를 막 끝낸 후였다. 내 손안의 은행, 일상으로 스며든 금융. 그들이 내세운 계획들은 저 상상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그 후로 15개월여가 지난 2017년 4월 3일,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문을 열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아 회원가입을 하고, 앉은 자리에서 5분 만에 듀얼K 입출금통장을 발급받았다. 자율입출금 통장인데도 연 1.20%의 금리를 제공한다고 했다. 나머지 예.적금과 대출도 둘러봤다. 15개월을 기다렸지만 실망하는 데는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금리, 상품 어느 것 하나 파격적이지 못했다. 시중은행들의 치열한 모바일뱅크 경쟁 속에 소비자의 눈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뒤였다.

핀테크 벤처기업 모벤의 대표이자 금융분야 세계적 미래학자인 브렛 킹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인터넷은행이 경쟁해야 하는 것은 전통은행이 가진 예금, 대출, 송금 기능을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돼야 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기대했던 건 신선한 경험이다. 처음 인터넷은행들이 그렸던 청사진도 같은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꿈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 컸다. 은행을 탓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지난 15개월간 한국 사회는 엄청난 혼란을 겪었고, 인터넷은행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부는 아직 은산분리 규정을 완화할 계획이 없다. 그들이 자본금을 늘리지 못하면 디지털뱅크 혁신은 결국 꿈으로만 끝날 것이다.

케이뱅크 가입자가 이미 4만명을 넘어섰다. 가입자 증가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자료가 실시간 쏟아지고 있다. 기뻐하긴 너무 이르다.
진짜 경쟁은 호기심이 끝난 후부터 시작될 것이다. "금리가 얼마예요"가 아니라 "이 치마 살 수 있나요"라고 물을 수 있는 은행을 만나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승산이 없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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