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생각만 해도 섬뜩한 ‘코리아 패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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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치슨라인 악몽 떠올릴 때
반미친중이 진보일 수 없어.. 차기 정부 사드 폐기 안 돼

북한이 핵.미사일 역량 고도화에 혈안이 된 가운데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참이다. 한반도 안팎에서 미국·소련이 각축하던 냉전기를 돌아보게 된다. 약소국의 비애를 절감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2016년)인 한국의 처지가 그때와 같진 않다. 다만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 어깨 너머로 좌우될 소지가 있다는 점은 여전하다.

코리아 패싱(한국 건너뛰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이슈가 한국이 빠진 채 논의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소위 애치슨라인을 통해 이를 뼈아프게 체험했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의 영토 야심을 막기 위한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선언했을 때다. 그해 6월 25일 북한 김일성은 남침을 강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과도기적 안보 리더십 공백 탓일까. 코리아 패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물론 정부는 "한.미 동맹에 대한 이해 부족"(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이라고 이를 일축한다. 그러나 국내외 상황을 보면 마음을 놓기도 어렵다. 얼마 전 한.중.일을 교차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을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지칭한 반면 한국을 동북아 안정과 관련한 하나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다. 불길한 조짐이다. 전임 오바마 정부가 한.미와 미.일 동맹을 린치핀(핵심축)과 코너스톤(주춧돌)으로, 동렬에 놓았던 것과 대비되면서다.

더욱이 로이터통신의 최근 보도를 보라. 한국의 차기 정권이 사드 배치를 백지화하거나 북한제재에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미 국무부 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국 외교관보다 대선주자들과 외교안보 참모들을 만나는 데 주력한 데서도 확인되는 징후다.

이 마당에 중국은 5월 대선 이후 사드 배치라는 '박근혜표 정책'이 철회될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다. 이에 부정적인 정당의 집권을 상정하면서다. 중국 정부가 '코리아 배싱'(한국 때리기)을 노골화한 배경이다. 이미 중국 내 롯데마트 99개 중 87개점이 문을 닫았다. 지난달 현대차의 중국시장 판매대수도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고 반토막 났다. 이쯤 되면 '사드 쇼비니즘'이라고 해야겠다. 오죽하면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한국과 같은 이웃을 과거처럼 조공국 취급하는 행태라고 힐난했겠나.

그런데도 대중 수출액은 외려 늘고 있단다. 반도체 등 한국산 중간재 수입을 끊으면 중국 제조업이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작금의 '코리아 배싱'보다 다가올 '코리아 패싱'을 예방해야 할 이유다. 그래서 우리 내부가 걱정스럽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수감된 이후 촛불집회에서도 '사드 폐기' 구호가 난무하고 있어서다.

보수와 진보는 사회체제와 현상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폐해가 두드러지는 시기엔 국가가 개입해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보태는 게 진보일 수 있다. 반면 구소련식 사회주의 경제의 파산 직전엔 이를 고수하는 것보다 시장경제를 지향한 고르바초프가 진보적이었다.
대약진운동 등 중국식 공산혁명을 추구한 마오쩌둥보다 이윤동기라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도입한 덩샤오핑의 실용개혁이 진짜 진보였음은 역사가 입증한다. 혹여 진보 진영이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김정은 정권의 핵무장이나 반인륜성에 대한 유화적 태도를 진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코리아 패싱을 부를 섣부른 반미친중 노선을 당연시해 시대정신을 오독해서도 안 될 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