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문재인 대세론과 이회창

조지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06 17:25

수정 2017.04.06 17:25

[기자수첩] 문재인 대세론과 이회창

"오랫동안 노출됐고, 앞으로 또 타격을 받을 상황이 올 수 있다. 대세론에 집착해 주변 관리를 못했다."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일까. 19대 대선을 30여일 앞둔 지금 얼핏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지난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당시 최병렬 후보 측이 선두를 달리던 이회창 후보를 겨냥해 한 말이다. 이른바 '이회창 필패론'이다.


두번째 대권 도전에 나선 이 후보는 장기간 유력주자로 꼽혔다. 그러나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노풍'이 불자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됐다. 공식 선거운동 전부터 패배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문재인 후보는 줄곧 대선 후보 지지율 선두권을 달렸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엔 대세론의 주인공이 됐다. 이 후보는 대선 재수에 실패했다. 삼수까지 도전했지만 결국 쓸쓸히 정계를 떠났다.

최근 문 후보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16대 대선에서의 이회창 후보다. 스스로를 대세라고 칭했지만 아들과 관련된 의혹에 집중포화를 받으며 수세에 몰렸다. 문 후보에 대한 호남의 반문정서처럼 이 후보가 영남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도 닮았다.

대세론은 또 다른 형태의 진영결집론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보수층이 숨어버리자 진보층 지지세만으로도 집권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이다.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장은 본인의 저서('하드볼 게임')에서 "진영결집론은 허구다"라고 지적했다. 보수의 결집으로 진보의 패배가 예상됐던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진영결집론의 허구성이 입증된 바 있다.

공자는 군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손이출지(孫以出之)'를 꼽았다. 겸손함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문 후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대세론에 취한 후보에게 국민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

봄바람처럼 찾아온 '안풍'은 문재인 후보에겐 위기다. 대세론을 고집하면 또 다른 필패론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소설 '파피용'에 나온 얘기처럼 모든 것은 역설이다. 위기지만 문 후보의 진면목을 보여줄 기회다.
대세론을 버려야 필승론을 얻는다.

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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