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사정기관 제자리 찾기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09 17:28

수정 2017.04.09 17:28

[데스크 칼럼] 사정기관 제자리 찾기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검찰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표기업 총수 1명은 뇌물죄 등 피고인으로, 1명은 신분은 참고인이지만 언제든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는 불안한 상태로 출석한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할 이들의 법원, 검찰 출석 장면은 권력에 예속되다시피 한 한국 기업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이다. 이 부회장은 박영수 특별검사가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 첫 재판에서 혐의 일체를 부인했고, 신 회장 역시 장시간 조사에서 기금 출연의 대가성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특검과 검찰 수사를 통해 최순실씨의 전횡 및 사익 추구 정황이 드러난 미르.K스포츠재단이 설립되지 않았다면 이날과 같은 비극적인 장면이 연출됐을까. 두 재단에 출연한 대기업은 53개, 금액은 774억원에 달하고 당초 검찰은 기금 출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 측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 냈다.
그러나 이 부회장과 신 회장, 최태원 SK 회장의 경우 구속피고인이 됐거나 잠재적 피의자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단 출연을 전후해 소위 '현안'이 있었고 현안 해결을 위해 재단 출연이나 최씨 측을 지원한 게 아니냐는 것이 특검과 2기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시각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재단이 설립되지 않았거나 이들 기업이 재단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무산되고, 롯데는 면세점 면허 획득에 실패했을까. 또 확정된 징역 4년 중 2년7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최 회장 특별사면은 불가능했을까. 경영권 승계와 면세점 승인, 특별사면 과정에서 절차적·법리적으로 범죄 단서가 있었는지 여부가 초점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살아 있는 권력의 요구로 다른 대기업과 같이 돈을 낸 행위에 대해 '현안'이 있었다고 대가성 거래 내지 뇌물로 단정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게 이들 기업의 주장이다. 귓등으로 흘려버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근본적으로는 권력감시기구 개편을 골자로 한 사정기관의 제 자리 찾기가 시급하다는 지적에 수긍이 간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미증유의 국정농단과 권력사유화, 기업을 하수인처럼 부리는 권력의 횡포를 차단하고 뿌리 뽑아야 할 사정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불신 때문이다. 검찰은 물론이고 경찰 등 여타 사정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검찰제도의 근본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그동안 부족하고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되살펴보고 겸손한 자세로 검찰권을 절제해 행사해야 한다"는 김수남 검찰총장의 발언은 당장 검찰 개혁의 칼날을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최고 사정기관으로서 자기반성이라고 믿고 싶다. 특히 존재감을 보여준다고 명확한 범죄물증보다는 정황이나 이른바 국민정서법에 기대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침 권력교체기를 맞아 사정기구 개혁안이 봇물처럼 터져나온다. 기관별 철저한 반성과 공론을 통해 합리적인 개혁방안이 도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사정기관들이 스스로 권력화가 아니라 권력 감시기구로서 제 역할을 다 할 때 국민은 생업에 열중하고 기업인은 법원이나 검찰청이 아닌 산업현장에서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이번 국정농단 사건이 남겨준 뼈 아픈 교훈이다.

doo@fnnews.com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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