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포퓰리즘 공약 무르기

이기고 보자, 무리한 약속 남발
그 결과 정권 실패위험 높아져
집권 후 성공 가능성에 눈 돌려야

바둑은 일수불퇴가 원칙이라지만 나는 우리 선거판은 예외라고 생각한다. 감당 못할 공약이라면 무르는 것이 백번 낫다는 뜻이다. 다급한 마음에 앞뒤 재지 않고 쏟아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들은 선거에 이겨도 정권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출범한 역대 정부마다 예외 없이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냈다. 그런 공약들은 집권 후 감당 못할 부담을 떠안겨 정권의 실패위험을 높였다. 박근혜정부의 대선공약 가운데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을 들겠다. 그 이유는 공약 무르기와 관련해 전형적인 두 가지 유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초연금은 집권 초기에 무른 경우다. 고령화 시대에 모든 국민의 최소한의 노후 생계비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이상은 좋았으나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의 재정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그해 상반기에만 세금이 10조원이나 덜 걷혔다. 기존에 해오던 복지마저 줄여야 할 형편에 연간 10조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복지 사업을 추가로 벌이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주기로 했던 것을 소득하위 70%로 축소했다. 당시에는 공약 부도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기초연금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을 상당부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무상보육은 반대로 재원대책이 불확실한데도 끝까지 밀어붙인 경우다. 박근혜정부는 재원 부족분을 지자체에 분담하라고 요구했다. 이 문제로 4년 내내 야당과 격돌했고 지자체와 극한적인 갈등을 겪었다. 보육 현장에서는 지원금이 끊겨 교사 월급도 제때 못주는 등 파행이 빚어졌다. 잦은 격돌과 갈등, 파행은 여야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켜 국정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여론도 나빠졌다. 준비 없이 밀어붙인 포퓰리즘 공약은 박근혜정부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국민은 이제 아무리 좋은 공약이라도 돈이 없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약을 실천할 수 없음이 명백한 데도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속이는 처사다. 속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국민이 느낄 배신감과 국정혼란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각 후보 진영에 다음과 같은 4단계 공약관리 지침을 제안하고자 한다. 1단계, 지키지 못할 공약은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2단계, 발표한 공약 가운데 지키지 못할 것들은 선거일(5월 9일) 전에 무르는 것이 차선이다. 언론에서 많이 지적했기 때문에 물러야 할 공약을 골라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3단계, 대통령이 된 이후에라도 무를 공약이 있으면 최대한 빨리 물러야 한다. 비난을 받겠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4단계, 물러야 할 공약을 임기 말까지 끌어안고 가는 것은 최악이다.

각당 후보들은 이미 상당수의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았다. 비이성적이고 백해무익한 포퓰리즘 경쟁은 앞으로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그런 공약들이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조이는 족쇄임을 깨달아야 한다. 포퓰리즘 공약은 국가는 물론이고 정권이나 후보 개인에도 독이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