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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유나이티드항공 사건을 보며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14 17:26

수정 2017.04.14 17:26

[월드리포트]유나이티드항공 사건을 보며


유나이티드항공사가 한 아시안계 탑승객을 기내에서 강제로 끌어낸 사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지난 9일 미국 시카고에서 켄터키주 루이빌까지 가는 유나이티드항공 3411편에 몸을 실은 올해 70세의 데이비드 다오씨는 승무원을 탑승시키기 위해 좌석을 포기하라는 항공사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다가 출동된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기내에서 질질 끌려나가는 봉변을 당했다.

이 사건이 미 전역 매체의 헤드라인으로 확산된 것은 현대사회 문화와 항공사 간부진의 판단 실수 때문이다. 사건 당시 기내에선 3~5명의 다른 탑승객이 휴대폰으로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다오씨가 항공사 직원, 경찰들과 승강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입술이 터져 얼굴에서 피가 흐르는 장면도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 그대로 노출됐다. 20~30대의 건장한 남성들이 피를 흘리는 70세 노인을 끌고 가는 모습은 '자극적 동영상'을 갈망하는 현대사회 매스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다오씨의 동영상은 TV와 신문, 인터넷 매체를 통해 삽시간에 미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졌다. 동영상을 지켜본 누리꾼들은 유나이티드항공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며 분노를 표명하고 있다. 일각에선 항공사측 행동이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론을 인식한 정치인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에 기름을 붓고 있다. 미 상원의 민주와 공화 양당 중진 의원들은 유나이티드항공과 시카고 공항당국에 해명을 요구했고, 미 하원에서도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중국에선 인터넷을 통한 이번 사건 영상 조회수가 7억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결국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가 이번 사건을 '엄청나게 키운' 것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의 최고경영자(CEO)인 오스카 뮤노스의 무능한 대처도 사건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사건 다음 날 뮤노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지극히 형식적인 발언으로 상황을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사건 발생 다음 날 직원들에게 '승무원의 대처를 지지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대처하기를 권장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냈다. 뮤노스는 뒤늦게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뒤였다. 다오씨는 항공사 측에서 합의안을 제시하기도 전에 이미 대형 개인 상해소송 로펌의 변호사와 기업상대 소송 전문변호사를 고용했다. 미 사고상해 변호사들은 이번 케이스와 관련, 다오씨의 변호인단이 최소한 수백만달러(수십억원)를 항공사 측에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소송의 천국'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 측의 과실이나 잘못됨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피해(damage)가 크지 않으면 거액의 보상금을 기대하기 어렵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다오씨의 부상은 입술이 찢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부상을 최대한 부풀려서 고액의 보상금을 받아내는 것이 사고상해 변호사들이 하는 일이다.

만약 단순한 교통사고로 다오씨의 입술이 찢어졌다면 1000달러(약 110만원)에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치 조직폭력배가 한 노인을 폭행하는 듯한 모습의 동영상과 책임을 회피하는 항공사 대표의 안이한 대처가 이번 사건을 실제 가치보다 수천배나 더 올려놨다.

유나이티드항공 쪽도 수백만달러를 보상하더라도 이번 사건을 하루빨리 종결해 여론의 비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리하다.
실제로 이번 사건이 터진 뒤 이틀 뒤인 11일 유나이티드항공의 모회사인 유나이티드콘티넨털홀딩스 주식은 하루 만에 무려 3000억원의 시가총액을 잃었다. 제 아무리 '대마불사'의 초대형 기업이라도 리더가 무능하면 회사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기업에서나, 정치에서나,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리더의 중요성을 모두가 인식할 때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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