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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우리 안보자세를 짚어본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20 17:13

수정 2017.04.20 17:13

[여의나루] 우리 안보자세를 짚어본다

약 20년 전 제네바대표부로 발령을 받고 임지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했던 일은 가족이 기거할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시내 샹펠이라는 지역에 지은 지 25년이 지났지만 깨끗한 아파트를 한 채 월세 계약하였다. 그런데 내가 내는 월세에 포함되어 있는 공간의 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트와 주차 공간은 별로 다른 것이 없었지만, 지하 주차장보다 더 깊은 지하에 비상시에 우리 가족이 몸을 피할 수 있는 대피소가 있었다. 관리인이 안내해준 대피소는 출입문이 시멘트와 납으로 되어 두께가 족히 30~40㎝ 되어 보였고 세대별로 칸막이가 되어 있고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그때까지 외교관 생활 25년여간 어떤 나라가 스위스를 공격할 것이라는 정세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터이라 인구 800만에 극소수의 교관 등을 제외하고는 상비군이라고는 없는 나라, 20~50세의 남자는 모두 시민임과 동시에 군인인 이 나라의 안보태세를 직접 목도하고 불안한 휴전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의 평소 안보태세에 대해 여러 번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매달 민방위 훈련을 하지만 막상 상대의 기습공격이 있으면 내가 어디로 피하였다가 반격에 나서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파트의 동별로, 동네의 통·반별로 가장 가까운 지하에 대피공간을 배정하여 평소 숙지토록 할 만한데 그런 계획이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북한의 거듭되는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도발과 이에 대해 이제는 말로만으로는 안되겠다는 미국의 무력시위로 한반도 안보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북한 도발의 첫 번째 이해당사국은 분명히 대한민국인데 그 동맹국인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진 이동시키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별다른 말이 없다가, 우리 정부의 동의 없이는 동맹국의 무력사용은 불가하다는 언급을 내놓았다. 무력충돌로 인한 인명피해를 걱정하는 사회적 불안을 불식시켜보자는 정부의 생각인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의 기대효과에 김을 빼버리는 듯하여 몹시 아쉬운 생각이 든다.

통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어야 한다. 통일 그 자체만을 위하여 자유.민주.인권.시장경제와 같은 우리의 기본적 가치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위협이 있다면 무력사용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오히려 무력충돌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은 모세 다얀 장군이었다. 그는 26세에 전쟁터에서 한쪽 눈을 총탄에 잃어버리고 검정색 안대로 한 눈을 가린 애꾸로 유명하다. 그는 어려운 안보 여건을 극복하고 승리를 이루어낸 지도자였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6·25전쟁에서 피 끓는 청·장년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싸우다 쓰러지고 다쳤다. 팔, 다리, 눈을 잃은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런데 휴전 이후 역대 우리 정부의 장관으로 봉직한 분들의 수가 족히 500명은 될 터인데, 그 중 몇 분이라도 전쟁터에서 팔·다리를 잃으신 분들이 국정의 일부를 맡고 국민들 앞장에 서는 모습이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사회의 안보 자세는 확연히 더욱 공고했으리라 생각된다.

'국력=(영토+인구+자원+경제력+군사력)×국민적 의지'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안보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지리멸렬하다면 아무리 땅덩어리가 크거나 경제력 등이 있어도 대외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증명됐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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