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내 기억 속의 개 세 마리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20 17:13

수정 2018.11.02 10:13

[데스크 칼럼] 내 기억 속의 개 세 마리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는 특이한 제목의 책이 배달됐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뒤 개가 좋아 수의사가 된 우리아이동물병원장 이원영씨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반려견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문득 내 기억 속의 개 세 마리를 떠올렸다. 누렁이와 해피, 그리고 샤일로다.

누렁이는 어린시절 우리 집을 지켰던 잡종견이다. 내 기억엔 덩치가 엄청 컸던 것 같은데, 썰매 끄는 시베리안허스키 같은 풍모는 아니었고 어느 동네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똥개'였다.
덩치는 컸지만 성정은 온순해 사람을 향해 짖거나 으르렁대는 법이 없었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날 사라졌다. "누렁아, 누렁아…." 개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데 엄마가 그러신다. "누렁이 할아버지한테 갔는데…." 하지만 할아버지댁에서도 누렁이를 찾을 순 없었다. 녀석이 할아버지의 여름 보양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나이를 먹은 후였다.

해피는 한 살이 채 안된 강아지였다. 제법 똘똘한 녀석이었는데, 이놈도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아직 어려서 집을 못찾는건가?"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 뒤 녀석이 불쑥 집으로 돌아왔다. 목에는 헝겊으로 만든 목줄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 개를 훔쳐갔던 게 분명했다. 자신을 포박한 목줄을 끊고 집으로 달려오는 녀석을 보며 얼마나 기뻤던지. 그러나 개도둑은 해피를 또 훔쳐갔고, 우리의 기대와 달리 녀석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 집에 다시 개가 들어오게 된 건 늦둥이 아들 때문이었다. 개를 키우고 싶다고 하도 성화를 하는 바람에 동물병원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정사각형의 방 속에서 또 다른 인연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마리의 강아지 중 유난히 눈에 걸리는 녀석이 있었다. 좀 시무룩해 보이긴 했지만 까만 눈이 새초롬하게 빛나는 요크셔테리어였다. 녀석에게는 샤일로(Shiloh)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안식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 똑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고, 똑같은 이름의 개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이 있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그러나 샤일로와 나의 관계는 순탄치 못했다. 마당에서 개를 키우던 시절만 생각했던 나는 집안에서 개 키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미처 몰랐던 듯싶다. 문제는 똥이었다. 배변연습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녀석은 허구한 날 똥과 오줌을 싸댔다.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소파 모서리를 이빨로 물어뜯고, 신발을 물어다 자기 집에 가져다 놓기 일쑤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아들이었다. 우리 식구는 아직 반려동물과 함께할 준비가 안됐다는 둥, 좀 더 나이를 먹은 후 다시 키우자는 둥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아들에게 파양을 강권했다. 끝내 아들을 설복하지 못했지만, 몰래 아내를 시켜 인터넷에 강아지 분양 공고를 올렸다. "이제 3개월 된 요크셔테리어인데요, 잘 키워주실 분 찾습니다."

샤일로는 그렇게 4주 만에 우리집을 떠났다. 집까지 찾아와 샤일로를 데려간 그 여성분은 한동안 SNS를 통해 샤일로의 소식을 전해왔다. 하루는 "우리 집 이불에 오줌을 쌌네요"라는 말과 함께 이름을 '(사고)뭉치'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곤 소식이 끊겼다. 개의 평균수명을 12~15년으로 친다면 녀석은 아직 어느 하늘 아래서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
뭉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을 샤일로에게, 문득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