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국산 철강 수입 조사하라"

명분은 안보, 속내는 수입제한..美 이번엔 철강 '무역장벽'

【 로스앤젤레스=서혜진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외국산 철강 수입에 대해 조사할 것을 지시하는 행정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철강산업에 대한 새로운 무역장벽을 세우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미국 철강업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철강 수입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령하는 내용의 행정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미국산 철강을 위한 역사적인 날"이라며 "미국 근로자와 미국산 철강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철강은 우리 경제와 우리 군에 대단히 중요하다"며 "외국에 의존하게 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정각서는 즉각 발효했다. 관련법상 상무부는 최장 270일간 조사할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 조사가 "50일 만에 완료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보안상 이유로 긴급 무역제재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다른 조항들과 다르게 이의 제기를 한 미국 기업이 외국 기업과의 경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없어 강력하다. 정부 당국은 국가안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제재를 건의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창설 이후 무역확장법 조항을 적용, 일방적인 제재에 나선 적이 없다고 WSJ는 지적했다. 이 법이 마지막으로 적용된 것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무역적자를 억제하기 위해 10% 일괄 수입과징금을 도입했을 때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행정각서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철강 수입을 제한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WSJ는 "트럼프 정부가 55년 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되살려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 수입에 새로운 무역장벽을 도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철강 수입을 국가안보 문제로 다룰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법뿐 아니라 국제법하에서도 철강 수입제한에 대한 폭넓은 법적 권한을 갖게 된다고 미국 언론들은 지적했다.

미국 철강산업은 1980년대부터 가격압력에 시달렸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는 값싼 외국산 철강 대량 유입과 미국 경제 약화로 인해 몰락하기 시작했다. 2001년 한 해에만 30개 이상의 철강기업이 파산했다.

이날 행정각서 소식에 미국 철강업체들은 환호했다. 마리오 롱기 US스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오랫동안 중국과 다른 국가들이 자국 철강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미국 철강산업에 경제적 전쟁을 벌여왔고, 글로벌 시장을 왜곡시켰으며 미국에 대한 과도한 철강 덤핑을 해왔다"며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산업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로저 뉴포트 AK스틸 CEO 역시 "우리는 정부를 대신한 이 행동이 우리와 다른 미국 철강 생산업체들을 도울 것이라고 희망한다"고 했다. 반면 한국 철강은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 조사에 이어 또 다른 악재를 만난 셈이 됐다.

하지만 이번 행정조치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며 오히려 역풍을 불어오지 않을까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미국 로펌 화이앤케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일방적 수입제한 주장으로 보복의 위험성을 상당히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행정각서가 중국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행정각서가 값싼 철강 수입을 제한해 국내 철강가격을 끌어올려 미국의 가격경쟁력을 갉아먹고 철강 소비 비중이 높은 건설 등 다른 산업에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jmary@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