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재훈 칼럼] 잔치 끝나면 청구서 날아든다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26 17:13

수정 2017.04.26 17:13

퍼주기 선심공약 갈수록 가관
예산 규모.조달방안 '나몰라라'
박근혜정부 실패 뒤따를건가
[이재훈 칼럼] 잔치 끝나면 청구서 날아든다

19대 대통령선거가 돈 전쟁, 복지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후보들은 포커판의 갬블러처럼 사탕발림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쪽에서 '100원 주겠다'고 공약하면 반대편은 '100원 받고 100원 더' 를 외치는 격이다. 기초연금 30만원 인상안,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안이 그렇게 나왔다. 질세라 상대방 것을 베끼고 받아치다 보니 공약 내용이 비슷비슷해졌다. 원대한 국가경영의 청사진은 없고 그저 올망졸망한 퍼주기 공약의 대결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포퓰리즘 공약이 기승을 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갑작스러운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대선으로 후보들의 준비가 부족했다. 게다가 종래의 지역대결 구도, 보수.진보의 대립 구도가 흐려지면서 후보들은 청년.노인 등 자신의 취약세대 유권자들을 필사적으로 공략할 수밖에 없다. 다급한데 아이디어는 없는 후보들이 우선 동원하는 것이 돈주기 공약이다. 그러나 이런 공약들은 정확한 소요재원 규모와 현실성 있는 조달방안이 제시되지 않으면 한낱 거짓말에 불과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안철수 국민의당 등 5당 후보가 최근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에 정책답변서를 제출했다. 문 후보는 공약 실천에 178조원, 안 후보는 204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의 135조원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예산마저 주먹구구식으로 산정됐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문 후보는 81만개 공공일자리 창출에 연 4조2000억원이 든다고 했다가 25일 TV토론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로부터 "월 40만원짜리 일자리를 만드나"라는 비판을 받았다. 공무원 월평균 급여와 부대지원 비용을 감안하면 81만명 고용에 연 50조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와있다. 문 후보가 "우리 정책본부장에게 물어보라"며 발뺌한 이유를 알만하다.

기초연금 공약에 드는 연평균 추가비용을 문 후보는 4조4000억원, 안 후보는 3조3000억원이라고 했으나 국회예산정책처는 8조원으로 제시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5년간 임대주택을 85만가구, 75만가구씩 짓기로 했지만 소요비용에 대해서는 기금을 활용하겠다며 두루뭉술 넘어갔다.

후보들이 제시한 재원대책은 박근혜정부 공약가계부의 판박이라는 느낌이다. 문 후보는 지출 절감과 여유재원 활용 그리고 필요시 법인세율 인상 등을 밝혔고, 안 후보는 비과세.감면 정비와 재정개혁 등으로 공약 예산의 절반 이상을 조달하겠다고 하고 증세에 대한 언급은 회피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연 40조~50조원을 추가 조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후보 스스로가 알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쳤던 박근혜정부는 세출 절감,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 등으로 135조원을 마련하겠다는 공약가계부를 내놓았으나 처절히 실패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주겠다던 기초연금은 대폭 축소됐고, 3~5세 아동 무상보육은 지자체.교육청과 부담 떠넘기기로 갈등을 겪었다. 또 담뱃값 인상과 소득세 감면 축소로 세수를 채워 '복지 없는 증세' 논란을 일으켰다. 지금 같으면 차기 정부는 이보다 더한 '복지대란'을 겪을 것 같다.

잔치가 끝나면 청구서가 날아들게 마련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복지 잔치를 즐긴 후 계산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없던 일로 하든가, 나라 재정을 거덜내든가 둘 중 하나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유권자들이 두 눈 부릅뜨고 엉터리 공약을 가려낸 후 표를 던져야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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