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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대우조선해양에 남은 '적폐'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28 17:32

수정 2017.04.28 17:32

[여의도에서]대우조선해양에 남은 '적폐'


정권 임기 말에는 소위 '레임덕'으로 인해 큰 그림의 정책 결정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오히려 중대한 정책 결정이 쏟아지고 있다.

차기 정부 출범을 불과 20일 앞두고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앞으로 3년간 모두 80조원의 대출.투자.보증 지원을 하겠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다음 정부가 적극 실행해야 할 창업정책에 대해 현 정권이 임기 막판에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정부는 종전 계획보다 지원액을 10조원 정도 늘려서 판까지 키워 놨다.

뿐만 아니라 현 정부는 차기 정권 출범 2주를 앞두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습 배치를 강행했다.
지지율 1위 대선주자를 둔 더불어민주당에선 즉각 반발했다. 차기에 미뤄도 될 일을 현 정부가 급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청산 위기에 몰렸던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에 달하는 정책금융자금 투입을 차기 정부 출범 한달 전에 전격 결정했다. 신규 지원금은 내년 4월까지 도래하는 회사채 등 1조3500억원을 막고도 넘치는 돈이다. 4월 위기설에 빠졌던 대우조선은 이달에 도래한 회사채가 4400억원 정도다.

현 정부 경제 컨트롤타워와 대우조선 경영진은 신규자금 투입이 실패할 경우 책임을 지겠다는 배수진까지 쳐놨다. '결자해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 정부 들어 1, 2차에 걸쳐 투입된 총 7조원의 공적자금을 언제까지 갚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를 두고 대우조선에 돈을 쏟아부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국민연금 등이 ATM 기기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고 있다.

책임지겠다는 인사들 대부분이 다음 정부에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지 장담하지도 못한다. 2조9000억원에 달하는 신규자금 투입을 통해 대우조선은 일단 생명줄이 최소 2년 이상은 늘어났다. 2년 뒤 책임은 다음 정부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이미 공적자금 투입은 결정됐다. 사드가 성주골프장에 기습 배치된 것처럼 대우조선에 대한 채무 유예와 공적자금 투입 결정을 다시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적폐 청산은 아직 남았다. 대우조선은 5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하고도 무려 7조원에 달하는 공적 금융자금이 투입되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구조조정 혜택 기업이 됐다.

지난 2000년 매출 1110억달러(약 127조7600억원)를 기록했던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은 이듬해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 분식회계가 밝혀지면서 파산했다.
엔론의 분식회계를 눈감아주고 협력한 것으로 확인된 회계법인 아서앤더슨도 함께 공중분해됐다.

한때 미국 10대 기업이었던 엔론이 분식회계로 사라진 것을 지켜본 외국인들은 정부의 전폭 지원을 받는 대우조선을 기이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원칙 없는 구조조정이 벌어진 근본원인을 차기 정부에서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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