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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경세치용’의 정치개혁안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01 16:44

수정 2017.05.01 16:44

經世致用
[fn논단] ‘경세치용’의 정치개혁안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을 잡는 일이 아니라 민생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조선의 실학은 '세상 다스리는 일은 민생에 실질적 이로움을 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경세치용(經世致用)'을 확실히 알려준 이가 반계 유형원이다. 그는 임진·병자호란 이후 안보불안과 절박한 민생고를 풀기 위해 26권 13책의 방대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썼다. '수록'은 생각나는 것을 그때그때 기록한다는 뜻이지만, 실제 이 책은 역사적 사례를 들어가며 세목까지 구체적으로 기술한 국가개조론이요, 정치개혁안이었다.

유형원은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살아갈 수 있는 방편(恒産)'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요즘 관점으로 본다면 이것은 '일자리'에 해당되겠지만, 당시는 농업사회였기에 그는 '최소한의 토지'라고 본 것이다. 백성들이 항구적인 생업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방도 튼튼해지고 민심도 안정될 것이다.

'반계수록'은 농지를 나누고 세금부담을 바르게 하는 방안에서 시작한다. 농지를 국가소유(公田)로 하여 모든 농가 한 호당 100걸음의 이랑(畝) 100개 분량(頃)의 토지에 대한 경작권을 준다. 세금은 간단명료하게 수확의 15분의 1을 부과한다. 한편 병역은 농가 4호마다 1명을 차출하고, 이에 소요되는 경비는 나머지 3호가 분담한다. 그렇다고 그는 획일적으로 균등한 토지배분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토지분급은 보장하면서도 능력과 자질에 따른 차등은 두었다. 예컨대 농민에게 1경의 토지를 분배한다면 상.공인에게는 절반, 자체 생업이 가능한 어업과 소금제조업자는 제외했다. 반면 관리들은 직위에 따라 이에 상응한 토지를 배분해 준다.

교육과 관리 임용의 경우 사대부와 일반 백성은 차별 없이 능력에 따라 교육 기회를 갖는다. 지방과 서울에는 초등교육기관인 읍학과 사학을 두고 도와 서울에 중등교육기관인 영학, 중학을 설치하며 최고 학교로 서울에 태학을 운영한다. 상급학교는 지역별로 학업과 인격이 뛰어난 자를 선발, 진학시킨다. 태학에서 우수한 자는 정부의 관리로 임용한다.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학생에게는 군역을 면해주고 학생들의 숙식 등 모든 교육경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정부는 세입 내에서 세출이 이뤄지도록 개혁한다. 쓸데없는 관제는 과감히 정리하는 대신 관리에게는 녹봉을 제대로 준다. 관료의 임기를 보장해 업무장악력을 높이고, 관료의 업적을 평가해 승진에 반영한다. 군제를 정비하고 군사훈련, 무기, 방어시설을 강화한다. 상공업은 발전시키되 세금을 통해 농업이 위축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한다. 토지 세금도 쌀과 화폐로 받는 등 화폐의 주조.유통을 장려한다. 한편 세습 노비제는 궁극적으로 폐지해 품삯을 주고 고용하는 임금노동자 형태로 바꿔 나간다. 그러나 당장 노비제를 폐지하기 어렵다면 우선 어머니 신분에 따르는 노비종모법을 실시, 노비 수가 늘지 않도록 한다.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했음에도 헛된 정치 이론과 논쟁은 되풀이됐다. 유형원은 쌓이고 쌓인 과오를 바로잡아 민생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반계수록'이란 방대한 정치개혁안을 썼다.
그 개혁의 출발점이 토지개혁 등 농업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경세치용의 중농주의 실학이 탄생하게 됐다.

이호철 한국IR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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