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생물다양성, 더불어 산다는 것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09 16:54

수정 2017.05.09 16:54

[특별기고] 생물다양성, 더불어 산다는 것

생물다양성은 그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틀로 해석된다. 환경가족으로 적잖은 시간을 보내온 나에게도 생물다양성은 지속가능한 자연자원의 이용이란 지극히 경제적인 개념으로 자리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이해의 프레임이 우리 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생물다양성 보전의 목적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었고, 경제적인 기준에서 접근한 것 또한 사실이다. 아직도 '생물다양성'이란 어렵고 낯선 말 끝에 수개월 전 우연한 기회에 함평(고산봉)에서 만난 '붉은박쥐'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생명'이란 문구를 묶어 본다.

국립생태원으로 자리를 옮긴 지 반년이 되어간다. 세계적인 생태연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임직원들과 행보를 같이하던 중 문득 작고 예쁜 동물, '붉은박쥐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멸종위기종을 보전해야 한다는 책무감에서 알았었지만, 함께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경이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하는 생명들은 내일도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가 '붉은박쥐의 온대지역 생존기'를 통해 새롭게 다가왔다.

열대지역에 살았던 생물이 계절변화가 뚜렷하고 혹독한 겨울이 있는 온대지역에서 살아내기 위해서 치밀하고 완벽한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붉은박쥐는 낮은 온도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아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약 220일 동안 겨울잠을 자야 한다. 그동안 몸 속에 축적된 에너지로만 견뎌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특별한 동면장소가 필요하다. 12~14도 온도와 90% 이상의 습도가 항상 유지되는 곳에서만 220일의 대장정, 동면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

체내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동면기간을 연장하는 데 사용하는 전략이라니 얼른 납득하기는 어렵다.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면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깊은 잠에 떨어지면 생명이 위험하지만 달리 대응할 방법도 없다. 더욱 기막힌 일이 하나 더 있다. 동면을 하는 동안 수분 공급은 생존의 필수조건인데, 물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대신 자신의 체온을 낮추어 대기온도와 체온의 차이로 인해 체표면에 생긴 이슬로 수분 공급을 해야 한다. 각성 빈도를 최소화시킴으로써 에너지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는 전략이 놀랍다. 붉은박쥐가 언제부터 한반도에 살기 시작했고,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이질적인 종이 우리와 함께 살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저 고맙고 또 고맙다.


우리의 산하에 함께 살아가는 생명과 더불어 적어도 지금 여기에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붉은박쥐의 삶이 여기서 끝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 옛날 문득 던져진 붉은박쥐는 낯선 세상에서 막막함과 황당함에 몸을 떨지는 않았을까.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동지'라는 미셀 트루니에의 간결한 정리가 우리가 붉은박쥐를 바라보는 의미를 대신해준다.
같은 방향, 같은 이상을 바라보는 우리가 될 때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균형을 지켜내는 진정한 동지가 될 것이다.

이희철 국립생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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