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재훈 칼럼] 정조처럼 탕평하려면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10 17:10

수정 2017.05.10 17:10

당파 싸움에 아버지 잃었지만 보복 대신 권력 나눠 왕권 세워
정적에도 손내밀어야 진짜 통합
[이재훈 칼럼] 정조처럼 탕평하려면

문재인 19대 대통령은 승리의 축배를 즐길 겨를이 없다. 사상 최대 표차로 압승했다지만 그의 득표율은 41%로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의석비율(299석 중 120석, 40%)과 비슷한 수준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40% 지지율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당장 조각 인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첫번째 승부처가 될 것이다. 거야(巨野)가 고분고분 넘어갈 것 같지 않다.
협치와 통합의 묘가 절실하다. 문 대통령은 "대탕평 정치를 한 정조대왕처럼 부패기득권에 반대하는 모든 분들과 국민통합 정부를 만들겠다. 탕평 또 탕평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어떤 탕평인사를 꿈꾸는 것일까.

조선 22대 왕 정조는 붕당정치의 피해자였다. 소론과 가까웠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영조를 꼬드긴 노론벽파 세력이었다. 당시 권력을 장악한 노론벽파는 정조의 즉위도 반대했다. 정조는 세손 시절과 즉위 후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1776년 정조는 반대세력인 노론벽파에 둘러싸여 즉위하게 된다. 효장세자(사도세자의 이복형)의 양자로 살아온 그의 즉위 일성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 바람이 불어야 마땅하겠으나 정조의 선택은 달랐다. 원수인 노론 중 강경파 일부만 숙청하고 온건파는 받아들였다. 사도세자의 복권은 10년 후에나 이뤘다. 그리고 공평무사한 인사, 즉 탕평인사를 시행했다. 분노를 삭이고 미래를 지향한 정조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마땅한 지지세력이 없었던 정조는 노론을 칠 경우 보복이 보복을 부르고 권력투쟁이 가열될 것으로 봤다. 탕평을 해야 자신도 살고 백성도 살며 나라도 산다고 확신했다. 정조는 남인, 소론뿐 아니라 노론까지도 품으려 했다. 노론벽파의 영수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하고 불과 한 달 후 우의정으로 승진시켰다. 한편으로는 실력 있는 인재들을 직접 발굴, 중용했다. 규장각을 확대해 젊은 학자들을 배치했고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같은 서얼 출신을 발탁했다. 원칙과 능력에 입각한 관료 발탁으로 세대, 문벌, 지역, 당파의 물갈이를 시도했다.

정조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그가 정적인 심환지에게 쓴 299통의 편지가 이를 입증한다. 그는 권력을 고루 나누는 탕평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 안정을 도모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다. 협치와 통합, 탕평이 필요한 것은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분열과 대립을 봉합하는 한편 취약한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서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공화당 경선에서 경쟁한 윌리엄 수어드, 새먼 체이스뿐 아니라 민주당의 정적 에드윈 스탠턴까지 장관으로 기용하는 등 '라이벌의 팀'을 꾸렸다. 링컨을 "일리노이의 원숭이"라고 놀렸던 스탠턴은 국방장관을 맡아 보란 듯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정적인 전임 백인 대통령을 부통령에 임명했다.

무릇 탕평이라 하면 정조와 링컨, 만델라가 그랬듯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심지어 정적에게까지 손 내밀 정도가 돼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첫 총리 후보로 이낙연 전남지사가 지명됐다. 그가 호남 출신임을 들어 대탕평 인사라고 하는 모양인데 민망한 일이다.
같은 당 소속 사람을 쓰는 것에 탕평이란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100% 대한민국'을 표방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작부터 편가르기를 하고 '수첩인사', 나눠먹기 인사를 일삼으며 통합을 역행했고 국정은 삐걱거렸다.
문 대통령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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