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 걸음] 국민과 소비자, 같지만 다르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10 17:11

수정 2017.05.10 17:11

[이구순의 느린 걸음] 국민과 소비자, 같지만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모처럼 분위기가 좋다. 새 대통령은 당선이 결정된 이후 이틀간 통합, 소통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썼다. 취임식 전 야당을 찾은 문 대통령은 야당과 동반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몇 달간 수없이 스캔들을 쏟아내고, 선거 과정에서 여과 없이 막말을 쏟아내던 정치인들도 한목소리로 화합을 얘기한다.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도 모처럼 밝다.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바람을 얘기한다.
이것이 희망인가 보다. 그야말로 전 국민의 잔칫날이다. 안타까운 점은 오늘의 잔치를 길게 즐길 여유가 없는 현실이다. 당장 경제와 안보, 복지 등 그동안 살피지 못한 숙제들이 쌓여 있고,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약속들도 다듬어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숙제에 나도 한마디 거들어야겠다. 선거 과정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 대해 혼자 발끈했었다. 5세대(5G) 이동통신망을 정부가 직접 구축하겠다는 공약 때문이다. 중복투자를 막는다는 게 명분이었다. 또 전 국민이 매월 1만1000원씩 내는 이동통신 기본료를 폐지하겠다는 약속에도 속을 끓였다.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정부가 통신망을 직접 구축하면 그 통신망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결국 정부가 통신산업을 다시 독점하겠다는 말이 되는 것인가. 이동통신 기본료를 정부가 나서서 일괄적으로 폐지하면 기름값, 커피값도 일괄적으로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약속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내놓을 약속이 아니다. 통신회사가 할 약속이다. 통신회사가 그 약속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시장 경쟁이고, 소비자다. 대통령이 바라봐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기업이 바라봐야 할 대상이 소비자다. 국민과 소비자가 같은 사람일지라도 입장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 다름이 새 대통령의 공약에는 구별되지 않아 발끈했었다. 내가 발끈했던 것은 공약의 내용이 아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내놓지 말아야 할 공약을 후보에게 내놓는 전문성 없는 참모들의 전문성 부족이 내가 발끈한 대상이었다. 잔칫날 재 뿌리는 말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

대통령이 정보기술(IT)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5G 이동통신과 설비경쟁을 직접 다 챙길 필요도 없다. 그러나 소비자와 국민, 경쟁과 독점을 구분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참모를 가려서 기용하는 것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문제다.
새 대통령이 선거기간 내놓은 공약을 점검해 세밀하게 다듬어줬으면 한다. 새 각료를 정할 때 전문성을 봐줬으면 한다.


새 대통령이 할 일은 1만1000원 통신 기본료를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1만1000원 기본료 정도는 수월하게 낼 수 있도록 소비자의 소득을 높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또 1만1000원의 값을 하도록 통신회사들이 서비스 경쟁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