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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황폐해진 구룡산(九龍山)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15 17:19

수정 2017.05.15 17:19

[윤중로] 황폐해진 구룡산(九龍山)

아홉마리 용(龍)을 의미하는 '구룡'이라는 지명이나 명칭이 중국 문화의 영향권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자주 발견된다. 홍콩 구룡반도가 대표적이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구룡산, 구룡계곡, 구룡폭포, 구룡사, 구룡마을 등 아홉마리 용과 관련된 명칭이 전국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일곱마리 용인 칠룡, 여덟마리인 팔룡도 있는데 굳이 용이 아홉마리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폭넓게 퍼진 종교인 불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불교에는 부처님이 탄생하자 하늘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입으로 물을 뿜어 아기 부처님의 몸을 깨끗이 씻어드렸다는 설화가 있다. 부처님의 몸을 씻어드린 만큼 아홉마리의 용은 매우 복되고 좋은 일이 나타날 조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아홉이라는 숫자는 한자리 숫자 가운데 맨 마지막 숫자이면서 가장 큰 수이다.
예로부터 숫자 십(10)은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완벽한 수로 신성시됐기 때문에 아홉(9)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된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 예를 들어 바둑 9단, 정치 9단 등에서 숫자 아홉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신성한 힘을 가진 신화 속 상서로운 동물인 용이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아홉과 합쳐졌으니 그야말로 최고로 신성하고 좋지 않을 수 없다. 구룡은 좋은 징조, 상서로운 곳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구룡과 연결된 설화는 많다. 원주 치악산 구룡사의 경우 현재는 거북을 뜻하는 구(龜)자를 써서 구룡사이지만 과거에는 아홉구자인 구(九)룡사였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 구룡사 대웅전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 아홉마리 용이 살았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지세를 살핀 결과 그곳이 절을 세울 만한 가장 좋은 곳이라고 판단하고 도술을 써서 연못 물을 부글부글 끓게 했다. 그러자 놀란 용 여덟마리는 절 앞산을 여덟조각 내면서 동해로 쫓겨가고 한마리는 눈이 멀어 도망가지 못하고 연못에 머물렀다. 그곳에 세워진 절이 구룡사다.

서울에도 구룡을 의미하는 곳이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 사이에 자리잡은 구룡산이 그곳이다. 이 산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열마리가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바람에 한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 구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늘에 오르지 못한 한마리는 좋은 재목, 좋은 재산인 물이 되어 양재천(良才川)이 되었다고 한다. 이름이 상서로워서였던지 제곱미터(㎡)당 땅값으로 치면 아마 이 산이 한국에서 가장 값비싼 땅일 것 같다. 실제로 구룡산 자락인 개포동은 요즘 아파트 재개발이 한창인데 재개발 아파트의 값어치가 대단하다. 109㎡(옛 33평)짜리 아파트가 14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구룡산을 오르는 길은 눈살이 찌푸러질 정도로 황폐해져 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위들과 반질반질해진 수많은 등산로는 보기에도 딱할 정도다.
그 많은 나무계단이라도 빨리 설치해 이 산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yongmin@fnnews.com 김용민 금융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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