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이제야 할 수 있는 말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15 17:20

수정 2017.05.15 17:20

[기자수첩] 이제야 할 수 있는 말

"여기까지 오는 데 참 많은 일이 있어서 여러 번 그만두려 했습니다. 스페인 말라가대학에서 교수 제안이 왔었는데 마음 같아선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사기꾼이 된다는 이 감독의 말에 버텼습니다. 제가 정말 그런 위치에 있었다면 나라도 움직일 수 있지 않았겠어요? 그때 회자됐던 사람들 저 빼고 다 감옥에 갔습니다."

연세가 지긋한 대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됐기에 이제야 할 수 있는 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막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기념으로 그다음 날이었던 지난 11일(현지시간) 점심,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 인근의 한 식당에서 작가들을 비롯한 한국관 전시 관계자들과 기자단의 점심식사 자리였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이대형 예술감독과 코디최 작가, 이완 작가의 인사말을 듣는 시간.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던 코디최 작가는 일어나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난 1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는지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전 작가로 선정된 이후의 1년은 그가 30여년 전 미국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의 설움 못지않은 큰 고통으로 가득했던 시간처럼 보였다. 지난해 말 불거진 전 정권의 스캔들에 뜬금없이 이름이 오르면서 많은 오해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30여년간 활동하며 제프 쿤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그를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그가 한국관 작가가 되자 갖가지 의혹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그 마녀사냥 때문에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준비도 한때 어려움을 겪었다. 전시 준비가 두 달 지연되는 바람에 펀딩도 늦어져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시간을 함께했던 이 감독과 이완 작가 모두 갑자기 식사를 앞두고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한국 미술계 주류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이 감독 또한 당시 자질 논란에 시달렸고, 이완 작가 역시 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전 명품 브랜드 디올과 협업한 작품 '한국여자'로 여성단체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은 바 있다.


그들은 베니스비엔날레 전시를 통해 그동안의 논란을 한번에 잠재웠다. 해외 매체에서도 한국관의 전시를 주목했다.
지나온 시간을 보상할 상을 받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많은 이들이 마음으로 그들에게 황금사자를 보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문화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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