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北 '핵 인질극'과 달빛정책

지령 5000호 이벤트

대화로도 제재로도 못 막아.. 남북 주민 모두가 북핵 볼모
새 정부,'햇볕'과 차별화해야

지난 주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랜섬웨어' 비상등이 켜졌다. 컴퓨터 파일을 감염시킨 뒤 돈을 요구하는 사이버 공격이 확산되면서다. 인질의 몸값을 뜻하는 랜섬과 악성코드(멀웨어)를 합성한, 말 그대로 '사이버 인질극'이다.

지난 14일 북한의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는 이보다 더 심각한 사태다. 핵.미사일이란 흉기를 든 북한판 인질극에 한반도에 사는 갑남을녀가 볼모로 잡혀 있으니…. 일찍이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예전엔 대도시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판이었지만, 이제 공중전과 핵무기로 인해 시민이 인질이 됐다"고 진단했다. 북핵을 머리에 인 우리가 딱 그런 처지다.

북한은 '화성-12'로 명명한 미사일이 "최대 2111.5㎞까지 상승하여 787㎞를 날아갔다"고 자랑했다. 액면 그대로라면 전문가들은 준(準)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분석한다. 고각이 아닌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비행거리가 5000~6000㎞에 이르러 미 알래스카까지 도달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자행한 시점이 주목된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벼르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도 가겠다"는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더군다나 중국 정부의 회심의 카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식 당일에 말이다.

김정은이 국제적 고립만 심화시킬 무모한 선택을 한 의도가 궁금하다.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TF) 단장은 "지난 10년의 대북강경책은 더 잦은 북한 핵.미사일 실험만 불러왔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은 아니다. 대화를 하고 경제지원을 했을 때도 북한이 핵개발을 더 가속화하지 않았나.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게다. 북의 핵무장을 막는 데 햇볕도, 채찍도 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김씨 조선'이 3대에 걸쳐 핵 보유에 매달리고 있는 까닭이 뭘까. 그 이외엔 체제를 지킬 선택지가 없다고 보는 탓이다. 그의 선대가 그랬듯이 김정은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경제를 살리려면 개혁.개방을 해야 하나, 그 경우 바깥세상에 눈을 뜬 주민들의 동요로 세습독재 체제가 무너질까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더 절망적으로 '핵 인질극'에 매달릴 소지가 농후하다. 딱하게도 이를 단번에 끝낼 묘책은 없다. 인질극 수습 방법은 보통 세 가지다. 첫째, 식음료를 들여보내면서 대화로 달래는 일이다. 둘째, 전기.냉난방을 끊어 인질범이 무기를 내려놓게 하기도 한다. 이도저도 안 통하면 인질범을 조용히 제거하는 게 최종 대안이다.

지금 트럼프 정부는 레짐 체인지(김정은정권 교체)라는 마지막 카드를 흔들며 두 번째 대안을 펼치고 있다. 반면 미국 언론들은 문재인정부가 첫 번째 방안에 미련을 두고 있다고 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햇볕정책에 이어) '달빛정책'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한.미 엇박자가 염려되는 지점이다.

물론 북핵을 폐기하려면 제재도 대화도 필요하다. 다만 둘 다 효험은 없었다.
지난 수십년간 흉기(핵.미사일)만 더 날카로워지지 않았나. 우리를 볼모로 삼은 채 흥정은 미국과 하려는 북의 태도도 걸림돌이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나 외골수 도그마가 아니라 냉엄한 근거 위에 서야 할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달빛정책이 기존의 햇볕정책보다 더 현실적 성격을 띠게 될 것"(WSJ)이라는 전망이 틀리지 않기를 기대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