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정치를 살리는 언어, 정치를 파괴하는 언어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18 17:05

수정 2017.05.22 10:56

[데스크칼럼] 정치를 살리는 언어, 정치를 파괴하는 언어
2012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찬조 연설자로 나섰다.

"남편인 대통령의 책상 위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로 가득하다. 세상 그 어떤 통계자료나, 모든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판단을 모아도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결정은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때 대통령으로서 그의 결정을 이끄는 최종적인 힘은 그가 간직해온 가치와 비전 그리고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삶의 경험이다."

이 같은 연설에 대해 민주당 출신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저는 차기 민주당 대선후보로 점찍어 두었던 사람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면서 "미셸과 결혼할 정도로 훌륭한 감각을 지닌 오바마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다"고 말해 청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정치인의 말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독일 헌법학자인 칼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우적(友敵) 개념으로 설명했다. 막스 베버는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고 했다.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키아벨리는 정치란 변덕스러운 운명의 신(프로투나)이 작용하고, 그 속에서 적극적 의지와 신념(비르투)을 가진 인간이 싸워가는 세계라고 말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사납고, 위험한 세계다. 그러나 정치가 꼭 갈등의 원천이기만 한 건 아니다. 역으로 정치는 갈등 해결을 촉진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꼭 싸우기 위해 정치가 있는 게 아니다. 싸움이 있기에 정치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강제나 억압이 아닌, 말의 힘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체제인 민주주의에서는 더욱 그렇다. 거칠고, 야유하고, 냉소하는 언어는 정치를 파괴하는 사나운 흉기다. 이런 사나운 언어는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하게 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냉소와 반정치주의만 부추길 뿐이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토니 모리슨은 "말은 정치적인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치인의 말은 기본적으로 '당파적 열정'을 담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말은 이성적 판단에 의해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인간적인 따뜻함, 표현의 부드러움에 의해 뒷받침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정치언어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때로는 혐오스럽고 폭력적이다. 금도(襟度)를 벗어나고 있다.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다가 슬금슬금 기어나온다" "육모방망이로 뒤통수를 까버려야 한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살벌하고 섬뜩한 얘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선 때도 상스럽고 혐오스러운 막말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도둑놈들의 새끼들" "지랄을 하는지" "못 이기면 ○○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 "완전히 골로 보냈다" 등등.

이런 막말에 대해 언론이나 정치평론가들은 상당수가 후보들의 계산된 발언이라며 정치공학적 전략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이게 어디 선거전략으로만 볼 일인가. 이게 어디 지도자가 되겠다는 정치인들이 할 말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도자가 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이 어떻게 비칠지 불 보듯 뻔하다.
이제 제발 그만들 하라. 국민은 '담대한 희망'의 언어에 가슴 뛰고 싶어한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정치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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