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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특사외교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1 17:04

수정 2017.05.21 17:04

1971년 7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이던 헨리 키신저를 비밀리에 중국에 특사로 보냈다. 키신저는 중국 지도부를 만나 외교담판을 통해 닉슨 대통령의 방중과 미.중 수교의 길을 열었다. '죽의 장막'을 걷어낸 키신저의 방중외교는 특사외교의 백미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남북관계에서 특사가 종종 활용돼왔다. 가장 극적인 것은 1972년의 남북 특사 교환이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해 고 김일성 주석을 두 차례 만났다.
언론에선 그를 대북밀사로 불렀지만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특별한 임무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특사였다. 그의 평양 방문은 북측 박성철 당시 부수상의 서울 답방을 거쳐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6.25 이후 꽉 막힌 남북 간에 대화 물꼬를 튼 계기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후 남북관계에서 여러 명의 대북특사가 탄생했다. 전두환정부 시절 장세동 안기부장, 노태우정부 시절 박철언 정무장관과 서동권 안기부장 등이 북방밀사로 남북 사이에서 막후 창구 역할을 했다. 김영삼정부에서도 1993년 북한 핵위기 때 특사 교환 논의가 잠시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남북 간 특사협상에 가장 적극적인 정부를 꼽는다면 김대중정부일 것이다.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 특사로 북측과 사전조율을 통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7년의 2차 남북 정상회담도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이 대북특사로 활약한 결과였다.

특사는 국가원수가 특별한 임무를 부여해 외국에 보내는 일시적인 외교사절을 말한다. 외교관계가 없거나 있더라도 통상적인 외교경로를 통한 문제해결이 어려울 때 활용한다.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1961년)에 규정된 통상적인 외교사절 이외의 사절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과거 중국이나 일본에 보냈던 사신도 특사 개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정부가 취임 초부터 폭넓은 특사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미.중.일.러 등 주변 4강에 대한 특사외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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