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재훈 칼럼] 문재인표 노동개혁을 보고싶다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2 17:14

수정 2017.05.22 17:14

‘비정규직 제로’는 朴정부 데자뷔
임금 개편, 고용 유연화가 필수
노사정이 양보와 타협 도출해야
[이재훈 칼럼] 문재인표 노동개혁을 보고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외부 방문지는 인천공항공사였다. 그곳에서 문 대통령은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과거 정부에서도 중요한 해결과제였다. 하지만 누구도 난마처럼 얽힌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요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해 "한창 일할 나이에 퇴출시키는 고용형태는 앞으로 좀 자제해달라"고 기업인들을 압박했다. 취임 당일 광화문광장에서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그 무렵 고용노동부는 이마트의 근로자 불법파견을 적발했다. 재계에 비상이 걸렸고 한화, 신세계, SK, GS, 현대차 등 여러 대기업이 수천명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4년 동안 비정규직 근로자 숫자는 꾸준히 늘었다. 정규직 전환이 제도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시혜 차원의 이벤트에 그쳤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을,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을 재촉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비정규직이 늘어난 원인부터 파악해야 한다. 기업은 정규직 근로자를 마음대로 자를 수가 없다. 일감이 많아져 채용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훗날 감원에 대비해 비정규직을 우선 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규직은 강성 노조를 통해 고용과 고임금을 보장받는다. 정규직의 과보호가 노동시장 양극화를 초래한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정규직 노조의 양보를 얻어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고용 유연화를 위한 조치를 해야만 한다.

다행히 문 대통령은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노동자들도 한꺼번에 다 받아내려고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의 임금구조를 그대로 두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며 "이런 부분에서 노사정이 고통분담을 하며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전환 문제도, 근로시간 단축도 노사 간 타협이 우선돼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노사 단체 대표뿐 아니라 비정규직 단체 대표까지 참여하게 됐다. 과거 노사정위원회의 기능을 일자리위원회에서 맡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 분야 사람이 모인 정책결정기구에서 합의를 도출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차라리 식물 상태의 노사정위원회를 복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진보정권 수립 이후에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복귀를 거부하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조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기존 연공서열식 호봉제 임금체계를 성과급제 또는 직무급제로 바꾸는 문제를 노사정이 합의해야 한다. 박근혜정부는 일반해고 도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노동개혁에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은 파기된 2015년 '9.15 대타협'에서 노사정은 주목할 만한 합의를 여럿 도출했다. 고소득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을 자제해서 청년채용과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쓰고, 근로시간 단축을 단계적으로 하며, 직무. 숙련 등을 기준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을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는 내용들이다.
노사정이 다시 모여 이런 부분들에 세부적인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그 자체가 손색없는 문재인표 노동개혁이 될 것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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