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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비정규직이 왜 생기는지 뿌리를 보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3 17:33

수정 2017.05.23 17:33

정권초마다 "임기내 해결" 선의만으론 고질 못 풀어
정권 초 정규직 전환 붐이 또 나타났다. 최근 정보통신 업체 SK브로드밴드는 협력업체 직원 5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키로 했다. 앞서 인천공항공사는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에서 불 붙은 정규직 전환 붐이 민간기업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 초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반짝 효과에 그쳤다. 되레 비정규직 실태는 더 나빠졌다.

4년 전 유통업체 이마트는 하청업체 직원 1만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그에 앞서 이마트는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을 시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의욕을 보일 때였다. 이마트로선 겸사겸사 정규직 전환 결정을 내린 셈이다. 비슷한 시기 은행 등 금융사들도 잇따라 비정규직 해소 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되레 실타래만 더 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은 자리에서 "간접고용까지 합치면 절반 정도는 비정규직이고, 지난 10년간 비정규직이 100만명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근본적인 해결책을 놔둔 채 노동계와 재계, 정치권이 갑론을박만 일삼았기 때문이다.

개선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2007년 기간제법을 비롯해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됐다. 2년 이상 채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게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현실과 충돌했다. 기업들은 2년을 채우지 않고 해고를 일삼았다. 그 통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더 큰 고통을 받았다. 박근혜정부는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는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고, 정치권도 법 개정을 포기했다.

정권 초 기업 선의에 의존하는 일회성 대책은 한계가 뚜렷하다. 기업들이 스스로 정규직을 채용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는 한 비정규직 해소는 요원하다. 저임 비정규직은 고임 정규직을 떠받치는 희생양이다. 고임 정규직이 누리는 기득권부터 허물어야 한다.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 시각도 바꿀 때가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고용 형태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용기한 4년 연장도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희망자에 한해 고려할 만하다. 비정규직보호법은 약자를 돕는다는 근사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신통찮았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땐 선의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늘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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