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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묘한 기름값'의 재연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3 17:33

수정 2017.05.23 17:33

[차장칼럼] '묘한 기름값'의 재연

2011년 1월 13일은 정유업계에 '흑역사'로 기록된 날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제78차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 갈때 (휘발유 소매가가 L당) 2000원인데, 지금 유가가 80달러 수준이면 조금 더 내려가야 할 텐데 1800~1900원 정도 한다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주유소의 이런 행태가 묘하다"고 말했다. 이른바 '묘한 기름값' 발언이었다. 이후 정유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대통령의 '묘하다'는 발언 한마디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당시 주무부처 수장이던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공인회계사 자격이 있는데 기름값이 적정한지 직접 정유사 회계장부를 뜯어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대통령의 발언 3개월 뒤 최대 정유사인 SK에너지가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3개월간 L당 100원 인하하는 대책을 부랴부랴 내놨다. 이어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도 공급가를 L당 100원씩 내리며 정부의 입맛에 순응했다.

알뜰주유소도 이때 등장했다. 정부는 정유사들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며 농협과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알뜰주유소 사업을 전격 허가했다. 도입 당시 알뜰주유소의 가격정책은 일반 주유소보다 L당 100원 이상 싸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어떤가. 알뜰주유소와 일반 주유소의 가격차는 30원 안팎에 불과하다. 알뜰주유소 무용론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이명박정부의 기름값 정책 타당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유업계에서는 시장 왜곡의 대표 사례로 남아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원·달러 환율 상승 등 기름값의 다른 가격변수들은 무시한 측면이 강했다.

문재인정부도 핵심 국정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을 내걸었다. 당장 미세먼지 저감 차원에서 고강도 규제책들이 논의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노후 석탄화력발전을 폐쇄하고 10% 미만 공정률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립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경유값 인상도 논의되고 있다. 주유소 경유값을 인상해 경유차 운행을 줄이는 게 대표적인 미세먼지 저감 대책이다. 당장 에너지기업들은 아우성이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고도화 설비를 적용해 미세먼지 배출량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준인데도 싸잡아 규제하려 한다" "미세먼지 원인은 중국발 황사 유입이나 노후 발전, 산업용 배출 등 다양하고 명확한 원인 규명이 없는데도 경유차 운전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논의되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들은 시장과 소비자의 저항에 부딪힐 게 뻔하다. 외과수술식 규제정책이 필요하다.
노후 발전소와 신규 발전소를 구분하는 시각에서부터 정책 입안이 출발해야 할 것이다. 경유값을 인상하려면 경유차 운전자들이 납득할 객관적 근거 제시는 당연하다.
외교적 노력이나 정밀한 분석 없이 기업만 때려잡는 쉬운 길만을 가려한다면 그것도 포퓰리즘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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