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박 前대통령 첫 재판] 피고인으로 만난 ‘40년지기’…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3 17:46

수정 2017.05.23 20:41

한 법정에 선 박근혜-최순실
전직 대통령 세번째 재판, 법정 이례적 사진촬영 허용
朴, 초췌한 얼굴로 정면응시
재판장 "할말 있느냐" 질문에 공소사실 부인 후 입 닫아
비극을 만든 ‘악연’ 박근혜 전 대통령(앞줄 왼쪽)이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592억여원의 뇌물 혐의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한 가운데 최순실씨(앞줄 오른쪽)가 입정, 변호인의 안내로 피고인석에 앉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비극을 만든 ‘악연’ 박근혜 전 대통령(앞줄 왼쪽)이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592억여원의 뇌물 혐의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한 가운데 최순실씨(앞줄 오른쪽)가 입정, 변호인의 안내로 피고인석에 앉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국민적 관심이 큰 이 사건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의 법정 촬영을 허가했다."

2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형사대법정. 재판장이 이같이 말한 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정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박 전 대통령이 초췌한 얼굴에 굳은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에 이어 3번째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앉은 뒤 곧바로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법정에 들어서자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40년 지기인 두 사람은 서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카메라만 응시했다.

■최순실 "朴 재판정 나오게 한 내가 죄인"

이날 재판은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부터 진행됐다. 재판장이 "피고인의 직업이 뭐냐"고 묻자 박 전 대통령은 "무직"이라고 답변했으며 최씨는 "임대업"이라고 밝혔다.

공소유지를 맡은 검사와 재판장은 이날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을 '피고인'이라고 지칭했다. 일부 검사는 가끔씩 '전직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썼다.

재판장이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박 전 대통령은 공소사실만 부인하고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반면 최씨는 "40여년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이라고 통탄했다.

최씨는 이어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이나 이런 범죄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검찰이 몰고 가는 형태라고 생각한다"며 "이 재판이 정말 진정으로 박 전 대통령의 허물을 벗겨주고, 나라를 위해 살아온 대통령으로 남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저나 박 전 대통령이 한 게 아니고 박원오(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라는 사람이 한 일로, 삼성 말이나 차도 다 삼성 소유"라며 "삼성 합병과 뇌물로 엮어 가는 건 무리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 측은 크게 3가지 내용을 문제 삼았다. 우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대기업 출연금을 받았다는 뇌물수수 혐의에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어 최씨와 언제 어디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공모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고 형사사건으로서 증거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박 전 대통령 측은 SK·롯데그룹 측에 뇌물을 요구한 혐의에 대해서도 "SK나 롯데 측에서 어떤 부정청탁도 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과 관련해서는 "블랙리스트에 대해 어떤 것도 보고받은 적이 없고, 지원 배제시키라고 지시한 적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미경 CJ 부회장에게 퇴진을 강요한 혐의도 "조원동 전 경제수석에게 'CJ가 걱정된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이 부회장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시켜 청와대 기밀문건을 최씨에게 유출하게 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는 "최씨에게 연설문 표현 문구에 대한 의견을 물은 적은 있지만 인사자료 등을 최씨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변호인의 모두진술이 끝난 뒤 재판장이 "피고인도 부인하는 입장이냐"고 묻자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 입장과 같다"고 말했다.

■朴측, 공소사실 조목조목 반박

박 전 대통령의 첫 정식 재판을 방청하러 법원을 찾아온 친동생 박근령씨는 이날 재판이 끝난 후 취재진에게 "(박 전 대통령의) 민낯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흉악범도 아니고 중죄자도 아닌데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심경을 밝혔다.

한편 이날 서울구치소와 서울중앙지법 일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이 수감생활을 하는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박 전 대통령 지지단체인 '태극기혁명 국민운동본부' 회원과 개인 지지자 100여명이 모였다. 법원 주변에도 '국민저항본부' 등 200여명의 지지자가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무효다"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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