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장사꾼의 지갑을 여는 법

"외부 협력회사 비정규직원들에게 영업과 AS를 의존하다보니 통 경쟁력이 살아나질 않아요. 가입자를 소중히 생각하는 회사의 마음이 협력사 직원을 통해 모든 가입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니 가입자 이탈도 많고 비용만 많이 들어가요. 대책을 세워야겠어요."

2월 어느 날 갓 취임한 SK브로드밴드 사장과 만난 자리였다. 승진을 축하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덕담이나 나누자고 만났는데 내내 고민만 듣다 끝났다.

초고속인터넷, 인터넷TV(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선통신 회사들은 고객센터를 통해 가입자 민원 처리와 사후관리(AS), 영업, 설치 같은 가입자 만나는 일을 모두 처리하는 게 특징이다. 대부분의 유선통신 회사는 고객센터를 외부 전문회사에 맡긴다. 자체적으로 고객센터를 운용하기엔 비용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고객센터 전문회사에는 여러 통신회사 영업점들이 모집한 가입자 정보가 모여들게 된다. 그러다보니 고객센터 직원들이 A 유선통신 회사 가입자 수백명에게 전화를 걸어 B 회사로 서비스를 옮기라고 권유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새로 가입자를 모으면 통신회사가 더 많은 수수료를 주기 때문이다. 고객센터 전문회사의 AS기사는 아무래도 통신회사 직원이 아니다보니 가입자의 집에 초고속인터넷을 설치하러 가서도 굳이 애사심을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이런 고충을 알고 있었던 터라 새 사장의 고민이 이해됐다. 그래도 고정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전문회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랴 싶어 고개만 끄덕거려줬다.

최근 SK브로드밴드가 설치와 AS를 전담할 자회사를 새로 만들고, 협력사 직원 약 5200명을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앗! 사장이 되자마자 그렇게도 고민스러워 하더니 결국 결단을 했구나 싶었다. SK브로드밴드는 정직원이 1600명쯤 된다. 무려 3배가 넘는 직원을 정규직원으로 고용하기로 했으니 그 비용은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

KT, 케이블TV 회사 같은 막강한 경쟁자들과 경쟁하려면 비용을 들여서라도 가입자를 늘릴 체력을 갖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용을 치러야 이익을 늘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고민은 좋은 일자리다.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고 직접 챙기고 있다. 그런데 좋은 일자리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 개수를 챙기는 것보다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 아닐까 싶다.


단기적으로 비용이 늘어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득이 보이면 투자의 개념으로 지갑을 여는게 장사꾼의 원리다. 부담스러운 투자를 결정했는데, 정부정책과 딱 맞아떨어졌으니 SK브로드밴드는 그야말로 양수겸장을 부른 격이다.

모든 기업이 양수겸장을 부르는 마음으로 지갑을 열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 경쟁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 아닐까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