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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김성근 감독과 노무라 가쓰야

성일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4 17:51

수정 2017.05.29 18:08

일본야구에 '헹가래(胴上げ) 투수'라는 독특한 용어가 있다.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를 말한다. 그는 반드시 마무리 투수가 아니다. 선발 투수일 수도 있다. 역할에 상관없이 팀의 간판투수에게 최고의 영광을 누릴 권리를 주는 것이다.

'헹가래 투수'는 대부분 마지막 한 타자만 상대한다.
세 번째 아웃이 되는 순간 두 손을 번쩍 들고 승리를 만끽한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다.

2009년 일본 프로야구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선수들이 마운드 위에서 한 노감독을 헹가래쳤다. 이긴 팀 감독인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양 팀 선수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감독의 몸을 떠받치고 있었다. 패한 팀 감독? 헹가래는 이긴 팀 감독의 전유물 아니던가. 노무라 가쓰야 감독의 당시 나이는 74세. 일본 프로야구 최고령 감독이었다. 1954년부터 시작된 프로야구 55년 인생의 마지막 경기였다. 선수들은 치열한 삶을 살아온 노 승부사의 유종(有終)에 승패와 팀을 떠나 최고의 경의를 표시했다.

노무라 가쓰야 감독은 전 한화 김성근 감독(사진)과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두 사람의 고향(일본 교토)이 같다. 고단한 어린시절도 비슷하다. 선수시절은 확연히 다르지만 무명으로 시작한 점은 똑같다. 감독 인생은 거의 판박이다.

노무라 감독은 '재생 공장장'으로 불렸다. 부상을 당했거나 한물간 선수를 일류로 거듭나게 만드는데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딱 김성근 감독이다. 양 감독의 스타일을 상징하는 것도 데이터를 중시하는 세밀한 야구다.

양 감독은 B클래스 팀을 맡아 세 차례 한국(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성근 감독은 2007년과 2008년, 2010년 SK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노무라 감독은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맡아 역시 세 번 우승했다. 야쿠르트는 구단주 스스로 "나는 요미우리 팬이다"고 할 만큼 침체되어 있었다.

노무라 감독은 2002년 사회인 야구팀 감독을 맡았다. 프로야구 감독 출신으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2012년 일본 사회인 야구팀과 유사한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감독을 역임했다. 김성근 감독에게는 김정준이라는 야구선수 출신 아들이 있다. 김정준은 야구해설을 하다 한화에서 아버지를 도와 경기 분석을 담당했다. 노무라 감독의 아들 노무라 가쓰노리는 아버지와 같은 팀에서 활약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만큼 많다. 차이점은 별로 없다. 김성근 감독이 지난 23일 75세의 나이에 갑자기 물러나기 전까지는. 묘하게도 감독에서 물러난 나이는 74세, 75세로 한 살 차이가 날 뿐이다.


김성근 감독은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린다. 어느 한 쪽 편을 들진 않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은 꼭 밝혀두고 싶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끝이 이렇게까지 초라해야 했나? 양 팀 선수들의 합동 헹가래는 아니더라도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퇴장할 수는 없었나.

texan50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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