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집 사기 힘든 미국

뉴욕시에서 허드슨강을 건너면 뉴저지주 북부지역인 버겐카운티라는 곳이 나온다.

70여개 타운(동)으로 구성된 버겐카운티는 높은 생활수준과 좋은 교육환경으로 잘 알려져 있어 한국인들이 거주지로 많이 선호하고 있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파견 나온 주재원이나 외교관들도 대부분 버겐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 1년여간 버겐카운티에서 '주택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부동산업계에 종사해온 한 관계자는 "25년간 부동산 일을 하면서 올해처럼 강력한 셀러스 마켓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격이 높게 나온 매물도 순식간에 팔리고 있다"며 "현재 주택시장은 셀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주택시장 열기가 과열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수요에 비해 매물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택구입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물 부족에 따른 주택구입난으로 기존 주택보유자들 중 집을 내놓은 비율은 현재 매우 낮아 매물부족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봄철 성수기임에도 주택 매물량은 20년래 최저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주택구입 희망자들은 원하는 지역에 매물로 나온 주택을 부동산 관계자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물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괜찮은 집이 나오기가 무섭게 바이어들이 뛰어드는 것이다. 집이 괜찮다 싶으면 10~15명의 바이어가 서로 경쟁을 벌이며 주택가격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2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전국 주택가격지수는 32개월 만에 최대폭인 약 5.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버겐카운티뿐만 아니라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괄목할만한 것은 주택시장 과열이 중산층을 겨냥한 가격대의 주택 매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겐카운티의 경우 판매가격이 70만달러(약 7억8400만원)가 넘는 부유층 겨냥 주택은 매물로 나와도 쉽게 팔리지 않지만 40만~60만달러에 달하는 주택들은 수요가 너무 높아 중산층끼리 '물어뜯기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의 좋은 교육환경을 위해 자그마한 집을 찾고 있다는 한 주택구입 희망자는 "지난 6개월간 5차례나 가격경쟁에서 밀려 주택을 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2008년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10년 전하고는 다르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은행들이 자격이 안되는 주택구입 희망자들에게 쉽게 대출을 허용하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모기지와 관련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주택 융자를 제공하는 은행들의 심사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워지면서 재정상태가 확실하지 않으면 주택 융자를 받기가 상당히 어렵게 됐다.

문제는 중산층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미국의 중산층은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하는 '내집 마련'조차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됐다.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이 미국의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정부 역시 향후 미 경제에 낙관적인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최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대폭적인 세제개편과 규제완화를 전제로 미 경제가 3%대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쎄…부자들은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중산층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중산층의 불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심히 우려된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