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길

김은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9 17:26

수정 2017.05.29 18:25

[기자수첩]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길

문재인정부가 첫 번째 암초를 만났다. 출범 3주 만이다. 협치의 첫 시험대라고 여겨졌던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을 두고서다.

4선 의원에 전남지사까지 지낸 이 후보자를 두고 정치권은 무난한 인사청문회 통과를 예상했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이 후보자도 과거 교사인 부인의 서울 강남지역 학교 부임을 위해 위장전입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유가 어떻든 모범을 보여야 할 총리로서 가볍지만은 않은 흠결인 셈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재인 대통령이 맞닥뜨린 암초는 후보 시절 내건 5대 인사원칙에 대한 자가당착에 있다. 이 후보자가 총리로서 적격하느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임용에서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를 원천 배제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겠다는 차원에서다.

그의 단호한 원칙은 취임 첫날 발표한 1호 인사부터 깨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내정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등 인사청문회를 앞둔 다른 인사도 줄줄이 원칙에서 벗어났다.

청와대의 실책이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뜨렸고, 원칙에서 어긋남을 알면서도 인사를 강행했다. 청와대는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고 고백했고,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분명 다르다. 어쩌면 작은 흠결 하나 없는 고위공직 적임자를 찾기 어려운 게 우리네 부끄러운 자화상일지 모른다. 뉴욕대의 심리학 교수 가브리엘 외팅겐은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줄여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이 격차인식과 실천의도에 있다고 봤다. 꿈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을 의도적으로 해나가면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외팅겐 교수의 말에 근거하면 일단 청와대의 첫 대응은 긍정적이다. 적어도 현실과 이상의 격차를 제대로 인식했고, 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재인정부는 이번 논란으로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길'을 향한 첫걸음을 뗐을지 모른다.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알았으니 이젠 실질적으로 줄일 해법을 찾아 나설 때다.
국회도 그 길에 동행하길 바란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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