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보수, 제대로 죽어야 부활한다

야권, 당권 쟁탈전 벌일 땐가.. 자성과 '웰빙 체질' 탈피 먼저
시대에 맞춰 젊은 사고해야

보수가 길을 잃었다. 요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대선 참패 이후 지리멸렬상을 접하면서다. 이렇다 할 정책 어젠다 하나 내놓지 못하는 건 정권을 잃은 처지라 그렇다 치자. 야당으로서 절치부심하는 모습조차 보기 어렵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당권을 놓고 내부 알력이 진행형이다. 대권을 놓친 홍준표는 자숙의 시간을 갖지 않고 페이스북 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종가 몰락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친박은 집단지도 체제로 바꿔 기득권 사수에 나설 태세다. 피차 민낯을 드러냈다. '바퀴벌레 같다'느니 '낮술 먹었나'라는 등 막말을 주고받으면서다.

이러니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두 당의 지지율을 합해도 20%에 못 미치는 게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85%)이 하늘을 찌를 기세인데 말이다. 물론 보수 궤멸의 일차적 원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공했다. 본인은 "한 푼도 먹은 게 없다"며 뇌물죄 등이 들씌워진 처지를 억울해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의 표현처럼 탄핵의 올가미에 "엮인" 것도 결국 불통의 리더십이 자초한 결과일 게다. 최순실 스캔들을 방조한 혐의의 친박이든, 방관한 비박이든 보수 몰락의 공범일 뿐이다.

자유한국당은 엊그제 대선 패배의 원인과 진로를 찾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과정도 결론도 실망스러웠다. "박근혜 사진 걸고 당선된 사람들이 괘씸한 행동을 하고 자기 밥그릇 챙긴 탓"이라는 등 '남 탓'은 무성했다. 한데 자책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과거 참여정부가 몰락했을 즈음 현 충남지사인 안희정은 '폐족 선언'이라도 했다. 반면 탄핵과 대선 패배라는 치욕의 터널을 지나면서 보수 정당에서 제 발로 2선 후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문재인정부는 사방의 '문비어천가' 속에 독주 조짐도 보인다. 굳이 통진당 해산에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하거나, 사건을 변호했던 인사가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게 그 징후다. 역설적으로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야당의 대안 있는 견제는 필수다. 국정의 지나친 '좌편향'을 막는 차원에서도 보수 정당의 재건은 절실하다. 그러나 왜 죽는지도 모르면서 부활을 꿈꿀 순 없다.

보수의 제1 덕목이 뭔가. 공동체를 위한 책임과 헌신이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그렇게 하는 데 게을렀다. 공식 일정이 없으면 청와대 관저에서 '근무'하곤 했다는 박 전 대통령의 자세가 이를 말하는 상징적 삽화다.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건 박정희 전 대통령식 국정 프레임에 매달렸지만, 아버지만큼 치열성은 보여주지 못한 셈이다.

보수의 또 다른 가치는 자유.시장.법치를 존중하되 시대 변화에 맞춰 사회를 개량해 나가는 일이다. 박근혜정부는 이에도 서툴렀다. 물론 건건이 법안 처리를 가로막았던 당시 야당의 책임도 없진 않을 게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의 소통 결핍과 의석만 많고 사명감도, 투지도 없는 여당의 '웰빙 체질'이었다.

독일과 영국 등 서유럽 보수 집권당들의 롱런에서 교훈을 얻을 때다.
특히 "영국 보수당은 오래된 정당이지만 새로운 변화에도 늘 수용적이었다"(강원택 저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는 지적을 경청할 만하다. 토지 소유 집단에서 출발한 보수당이 노동계급 등 새로운 사회 계층들을 끊임없이 포용하면서 살아남지 않았나. 뼈를 깎는 자성을 토대로 '젊은 사고'를 수혈하는 일이야말로 보수의 마지막 선택지다. 홍준표든 누구든 시대정신에 맞게 보수(保守)를 보수(補修)할 결기와 역량이 없다면 정치 전면에 나설 생각조차 말기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