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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美 제조업 일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02 17:14

수정 2017.06.02 17:14

[세계 석학에 듣는다] 美 제조업 일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1979~1999년 20년간 미국내 제조업 일자리는 1900만개에서 1700만개로 줄었다. 그러나 10년뒤인 1999~2009년에는 1200만개로 쪼그라들었다. 극적인 감소세는 세기가 바뀌면서 미 경제가 갑자기 작동을 멈췄다는 생각을 낳았다.

그렇지만 1999년 이전에도 제조업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제조업 일자리는 또 그 이전 수십년 동안에도 이미 파괴되고 있었다. 다만 한 지역 또는 부문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대개 다른 지역이나 부문에서 새로 생긴 일자리로 대체됐다.


20세기 초반 뉴잉글랜드에서 출생한 저자의 조부 윌리엄 로드의 역정을 예로 들겠다. 1933년 매사추세츠주 브록턴에 있던 그의 로드형제제화소는 갑작스레 파산에 직면했다. 조부는 공장을 임금이 낮은 메인주의 사우스패리스로 옮겼다.

브록턴 노동자들은 공장 이전으로, 또 뉴잉글랜드 남부 전역에 걸쳐있던 비교적 높은 급여의 블루칼라 공장 일자리가 파괴되면서 황폐화됐다. 그러나 크게 보면 이같은 손실은 사우스패리스 농촌 노동자들의 부로 보상됐다.

2차대전 뒤 로드 형제는 불황이 재발할 것을 우려해 회사를 쪼개고 팔아 현금을 챙겼다. 조부는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로 갔고, 그곳에서 부동산투기와 상업용 건물 건축업에 몰두했다. 이번에도 크게 보면 변화가 거의 없었다. 장화와 신발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줄었지만 더 많은 노동자들이 웰먼-로드 건설사에서 화학제품, 빌딩 건설, 공장 플랜트 등의 부문에서 일했다.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됐던 전후 기간 제조업(그리고 건설업) 일자리들은 실제로 북동부와 중서부에서 (남부를 지칭하는) 선벨트로 한꺼번에 이동했다.

2000년대 미 블루칼라 일자리들은 파괴되기보다는 크게 휘돌았다. 2006년까지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든 반면 건설업 일자리는 늘었다. 2006년과 2007년 주택건설 부문 일자리 감소는 기업투자와 수출 지원 부문의 블루칼라 일자리 증가로 상쇄됐다. 블루칼라 일자리가 휘도는 대신 다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대공황 이후다.

일자리가 어느 정도씩은 늘 움직이는 터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더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블루컬러 일자리를 일정 시점 절대규모가 아닌 전체 고용 대비 비율로 들여다봐야 한다. 사실 2차대전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제조업 일자리 비중 감소폭이 극도로 크고, 장기간에 걸쳐 강력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제조업이 오랜기간 안정된 상태였지만 중국이 세력을 키우면서 갑작스레 붕괴했다는 믿음이 거짓임을 입증한다.

1943년에는 미국의 비농업 노동력 가운데 38%가 제조업 종사자였다. 당시 폭탄, 전차 수요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전후 제조업에 종사하는 비농업 부문 노동력 비중은 30% 수준이었다.

미국이 독일이나 일본 같은 정상적인 전후 산업강국의 길을 걸었다면 기술혁신 덕에 그 비중은 30%에서 12% 언저리로 떨어지는 데 그쳤겠지만 8.6%로 급락했다. 감소폭 대부분인 9.2%까지로 떨어지는 원인은 거시경제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래 거시정책은 미국을 저축흑자 나라가 아닌 저축적자 나라로 바꿨다.

부자나라로서 미국은 전세계 산업화와 개발의 돈줄이 돼야 했고, 신흥시장이 미 제조업 수출품들을 사들이도록 해야 했다. 미국은 그러는 대신 다양한 비생산적인 역할을 상정해 세계의 돈세탁업자, 정치리스크 보험업자, 최후의 전주가 됐다.


지금처럼 가짜뉴스, 가짜 시민운동, 오도된 일화들이 판치는 시대에는 우리의 집단적 미래를 걱정하는 이라면 누구든 올바른 통계를 구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게 필수불가결하다. 공화당의 첫번째 대통령으로서 에이브러햄 링컨은 그의 '분열된 집(House Divided)'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알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브래드포드 디롱 美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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