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핀테크, 구세주인가 파괴자인가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06 16:47

수정 2017.06.06 16:47

[차장칼럼] 핀테크, 구세주인가 파괴자인가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누군가 2년 전 이야기를 꺼냈을 때다. 당시 파이낸셜뉴스는 16번째 서울국제금융포럼 주제를 '핀테크, 구세주인가 파괴자인가'로 정했다.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핀테크(Fintech)'가 정부 금융개혁의 핵심 카드로 막 등장할 무렵이었다. 암담했던 담당 기자가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에게 물었다. "핀테크가 대체 뭐예요"란 질문에 그가 짜증스럽게 답했단다.
"아, 나도 모르겠어." 불과 2015년 일이다.

2017년 현재, 전 세계에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자리를 잡았고, 업종을 막론하고 인공지능(AI) 경쟁이 시작됐다. 국내 금융권의 변화는 어느 업종보다 빨랐다. 금융거래의 90% 이상이 스마트폰에서 이뤄지고, "아들한테 만원 보내줘"라는 음성만으로 송금이 가능한 세상이 됐다.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 가입자가 30만명을 넘어서고, 2호인 카카오뱅크가 이달 출범을 앞뒀다. 금융당국은 세번째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도 추진 중이다. 핀테크가 등장한 지 2년 만에 기술 없는 금융은 더 이상 가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시중은행 한 고위 관계자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분위기에 3호 인터넷전문은행이 가능할까요?" 그럴 법도 하다. 새 정부의 제1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11만개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경제정책인 'J노믹스'도 다시 불어난 가계부채와 서민금융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금융위원장 인선은 최후순으로 밀려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디지털화에 속도를 내던 금융권은 갈 길을 잃었다. 오프라인 지점을 빠르게 줄이고, 희망퇴직도 속도를 내고 있는 와중에 거대한 벽을 만난 셈이다. 핀테크와 4차 산업혁명도 새 정부의 공약에 포함됐지만, 금융정책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도 논외로 밀렸다. 갈 길이 바쁜 은행들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현재 케이뱅크의 대출잔액은 3000억원을 넘어섰다. 케이뱅크의 자본금(2500억원)보다 많다. 하반기 주택담보대출 상품까지 출시되면 여신은 더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신액을 고려하더라도 몸집을 키우지 못하면 은행은 무너진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새로운 전자지급결제 관련 규제 'PSD2'를 도입,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핀테크 기업 등 금융기관이 아닌 제3자가 은행이 보유한 고유 데이터에 접근을 허용한 것이 골자다. 이미 장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국내 은행들도 로봇 은행원을 앉혔고 블록체인과 간편결제, 생체인증을 도입했다. 2년 전 핀테크가 터트린 물꼬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급류가 됐다.
물길을 막아선 정부가 함께 무너지지 않을까 두렵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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