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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국가기록원 독립성 보장해야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09 17:12

수정 2017.06.09 17:12

[여의도에서] 국가기록원 독립성 보장해야

기록문화는 그 나라 정신문화의 정수이자 총체다. 조선왕조실록은 꼼꼼한 사료기록과 엄정한 역사서술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기록문화 관리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얼마나 확보하는가가 핵심이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기록관리는 낙제점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 업무수행 과정에서 벌어졌던 각종 사실 등을 기록을 통해 문서화해 보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불법유출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어서다.

행정자치부 소속 국가기록원은 지난 5월 19일 박근혜정부에서 생산된 대통령기록물 1106만건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을 완료했다.
전자기록물 934만건, 비전자기록물 172만건 등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된 기록물을 비롯해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기록물도 여기에 포함됐다.

그러나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이전 정부로부터 인수받아야 할 주요 현안에 대한 문서가 거의 없다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실제 문재인정부가 박근혜정부로부터 인수받은 자료는 달랑 총무비서관실이 넘겨받은 100여쪽짜리 보고서와 10장짜리 현황보고서가 전부라는 것이다. 그것도 외교안보 등 국정 현안이 아닌 청와대 운영지침에 관한 해설이 고작으로, 박근혜정부에서 대통령 기록에 관한 무단유출과 불법폐기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부채질한다.

청와대에서 생산되는 모든 문서는 전자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빼돌리거나 폐기하는 등 불법적인 행위를 벌였다는 시비 자체가 문제다. 특히 기록원이 대통령 기록을 이관받는 데 집착해 너무 서둘렀다는 질책도 나온다. 이관받은 자료가 어떤 건지 세부항목도 기록돼 있지 않다는 것은 그저 이관받기에 급급한 기록원 측의 불성실한 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가기록원이 대통령기록물의 보호와 이관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무단폐기와 불법유출 우려에 대해서도 대통령기록물법에 처벌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을 뿐 실효적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통령 궐위 시 대통령기록물 지정에 대한 조항이 미비한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대통령기록물을 현 상태 그대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는 조치를 추진하는 한편 신속히 특별법 제정이나 대통령기록물법 일부 개정을 통해 궐위 시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주체를 정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기록원 측은 관련법에 권한대행도 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사실상 논란의 싹을 키웠다.

기록원이 행정자치부 소속으로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태생적 구조 탓이라는 분석이다. 국가기록원이 독립적인 국가기록관리 주체로서의 권한과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이유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 궐위 상황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 이상 기록물법의 전면적인 개편과 독립성을 담보할 장치를 마련하는게 급선무다. 행자부 소속 기관이 아닌 명실상부한 기록물 관리의 주체로서 조직의 자율성과 충분한 예산, 전문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행자부 관료들이 독차지하던 국가기록원 원장 자리도 기록문화에 대해 뚜렷한 철학과 원칙을 겸비한 능력 있는 전문가가 임명돼야 한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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