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이야기 속에 맛이 있다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12 17:23

수정 2017.06.12 17:23

[기자수첩] 이야기 속에 맛이 있다

지난 2010년 이맘때쯤, 일본 도쿄의 동양 최대 수산시장 츠키지에 있는 '스시다이(壽司大)'라는 초밥 집을 찾았다. 150여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있는 가게다. 새벽 5시에 문을 여는데 개점 2~3시간 전부터 손님이 줄을 선다. 당시 필자도 아침 8시부터 약 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작가는 데라사와 다이스케로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연재하고 이후 총 44권의 단행본이 나왔다.
초밥 요리사를 아버지로 둔 쇼타라는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다. 작가도 연재 초반에는 초밥에 대해 문외한이었으나 거듭된 취재와 공부로 후반에는 초밥의 정수를 다뤘다.

스시다이의 초밥 맛은 문자 그대로 '일품'이었다. 그 보다 더 비싼 초밥을 먹어봤지만 현재까지 그에 필적하기는커녕 비슷한 초밥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맛을 구별하는 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10년의 스시다이 초밥이 좋았던 것은 150여년의 역사, 일본이라는 환경, 교환학생 당시 같이 공부했던 일본인 동행, 그와 함께한 긴 기다림 등 복합적인 상황이 하나의 '이야기'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스테디셀러, 장수하는 식품에는 예외 없이 '스토리'가 있다. 1974년 출시돼 마흔 네살이 된 지금도 꾸준한 인기를 끄는 오리온의 '초코파이 정(精)'은 숱한 사연을 담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한국인 고유 정서인 '정'을 세계 각국에 맞게 접목해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세계 60여개국에 초코파이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초코파이보다 3년 먼저 출시된 농심의 새우깡도 현재까지 누적 78억개나 팔렸다. '손이 가요 손이 가'로 시작되는 새우깡의 주제곡은 그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다. 유당을 분해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콩을 사용한 영양제품 베지밀을 개발한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의 일화도 유명하다.

바야흐로 '스토리'의 시대다. 음악도 음식도 문화도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는다. 이야기에 답이 있고, 이야기에 맛이 있다.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장수 식품은 역사를 통해 이야기를 획득한다. 이야기가 없는 새 제품은 살아남기 힘들다.
CJ가 지난 2012년에 그룹 슬로건을 '문화를 만듭니다'로 바꾼 것도 이야기의 중요성 때문일테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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