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은행권 스스로 만든 모순

김현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12 17:23

수정 2017.06.12 17:23

[기자수첩] 은행권 스스로 만든 모순

"언제는 금융규제 완화에 자율성을 확대해달라고 하면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에 대해서는 획일적 비율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니, 이거 모순 아닌가요?"

금융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금융업권은 각자의 이익단체인 협회 등을 통해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네거티브로 바꿔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포지티브 규제는 소위 열거주의 방식으로 업무인가 범위 등을 열거해놓은 것이다. 반대로 네거티브는 '이거저거 제외하고 다 해'라는 의미로 포괄주의 방식이라고도 한다. 어려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낸다. 네거티브 방식은 금융권의 자율성을 확대하자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은행권은 DSR 도입에 대해서만큼은 자율성을 거부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최소한의 조건만 제시하겠다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은행권은 "싫다"고 거절했다. 하나의 규칙을 정해 달라고 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불특정 다수 고객 하나하나의 DSR를 산정하기도 힘든데 은행마다 DSR 산정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것이다.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은행들이 고객 특성에 맞춤형 대출상품을 만들어내는, 대출상품의 경쟁력을 늘리는 것이다. 지금은 천편일률적 규제 비율에 맞춘 획일적 대출상품밖에 없다.

결국 주택이나 사업권 등 담보 위주로 진행했던 대출심사 시스템을 개편하기 싫다는 말이다. DSR는 담보가 아닌 각 고객의 모든 부채에 대한 상환능력에 맞춰 산정된다. 예를 들어 미래소득이 많은 2030세대 맞춤형 대출상품이 나올 수도 있다. 대출한도가 많은데 금리가 높거나 대출한도가 적지만 금리가 낮은 상품이다. 4050세대는 대출한도가 낮은 만큼 각종 우대금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60세 이상에게는 주택연금과 연계된 대출상품을 구상할 수도 있다.

은행권은 이런 수많은 가능성을, 자율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영업행위나 인허가는 자율성을 달라고 한다. 현재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를 네거티브로 바꾼다고 한들 이들이 자유롭게 각종 상품을 만들어낼까. 금융당국의 눈치만 볼 게 자명하다.
그동안 금융당국의 규제나 제재, 검사 방식이 너무 강도가 높았던 걸까. 아니면 은행권 스스로 고정관념 프레임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이런 프레임을 깨지 않으면서 문재인정부가 금융을 홀대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maru13@fnnews.com 김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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