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가면무도회인가 청문회인가

무결점 공직후보 정녕 없나.. ‘내로남불’ 잣대 종지부 찍고 새 검증 기준 대타협 나서야

새 정부의 조각이 삐걱거리고 있다.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5대 비리(위장전입.병역면탈.세금탈루.부동산투기.논문표절) 배제' 원칙이라는 허들에 잇따라 걸리면서다. 강경화 외교 등 여러 장관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등 크고작은 암초를 만난 데다 청문회를 앞둔 김상곤 사회부총리와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 등도 논문표절이나 다운계약서 의혹 등 걸림돌을 넘어서야 할 판이다.

국민들은 기시감을 느낄 듯하다. 정권이 바뀌면 늘 똑같은 패턴으로 되풀이되는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갖는 데자뷔다. 야당 때 '비리 5종 종합세트'니 하며 망신주기 청문회를 주도하던 여권이 이제 유사한 얼룩이 묻은 후보자들을 엄호하느라 바쁘다. "몇몇 흠결보다 국정능력을 봐달라"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간청이 놀랍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여당 시절 지도부가 청문회 정국에서 했던 말 그대로 아닌가.

여야 간 공수만 바뀌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게임을 보면 중세 유럽의 가면무도회가 생각난다. 가면 속 인물을 알면서도 모른 체 일탈을 즐기던 광경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청문회에 오버랩되면서다. 문 대통령이 13일 야권이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을 빌미로 반대하는데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하지만 과거 정부에서 비슷한 전례를 목격한 국민에겐 예고된 결말인 양 비칠 뿐이다.

"이 쓸쓸한 게임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이 가면무도회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 레온 러셀의 올드팝 '가면무도회'의 한 소절이다. 여야 모두 행복하지 않은 청문회가 이 씁쓸한 노랫말보다 더 부질없어 보인다. 더러 낙마하기도 했지만, 이미 너덜너덜해진 후보들이 감투를 쓰는 뻔한 장면들을 보며 어느 논객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 무결점 인재는 없다"는 현실만 확인하면서다.

그런 맥락에서 여당 오제세 의원의 말이 솔직하긴 하다. 그는 얼마 전 중진자문회의에서 "5대 비리 공직 배제 공약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원들을 포함해 이 원칙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다. 하긴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3명꼴로 위장전입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청문회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 다르다"(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며 자의적으로 검증의 잣대를 바꿀 순 없다. 세상에 '착한 위장전입'이 어디에 있나. 표절(plagiarism)의 어원이 납치인데 검증 대상자를 장발장으로 포장한들 남의 지식을 훔친 본질이 달라지겠나.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미국식 청문회가 대안일 순 있다.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청문회에서는 정책 위주로 점검하는 방식이다. 다만 미 정부 윤리청과 연방수사국(FBI).국세청(IRS)이 가세해 233개 항목에 걸쳐 탈탈 터는 '사전 검증'은 대상자들에게는 가히 '지옥 코스'다. 겨우 20개 항목으로 검증하는 시늉만 하는 우리와 비할 바가 아니다. 이를 알면서 당장 소나기부터 피하려는 제안이라면 진정성이 의문시된다.

정략적 허위의식을 버려야 해법이 보일 게다.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봐야 벌거숭이 임금의 나신이 제대로 보이듯 말이다. 그러기에 여당이 먼저 야당 시절에 비해 검증의 잣대를 180도 바꾼 경위를 진솔하게 해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야권과 현실에 맞는 인사검증을 위한 대타협도 가능할 듯싶다. 이제부터라도 공정사회 건설이라는 애초 공약대로 순도 높은 후보자를 낼 의지가 있다면 별문제이겠지만.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