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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정부 눈치만 보는 상생은 이제 그만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15 17:11

수정 2017.06.15 22:00

[차장칼럼] 정부 눈치만 보는 상생은 이제 그만

요즘 유통기업들이 보내오는 자료를 보면 '상생'이라는 단어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협력업체 지원책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왜 갑자기 이토록 착해진 걸까. 아마도 새 정부 들어서면서 '찍히지 말고 눈치껏 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된 탓인 듯하다.

기업들이 이렇게 알아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초등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갑자기 선생님이 칠판에 '학습목표'를 적는 날은 어김없이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하는 때였다. 평소 수업교재로는 쓰지 않던 각종 교구도 등장한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다시 칠판에서 학습목표가 사라지고 교구도 보이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도 평소에 잘하면 될 것을 장학사가 올 때만 달라지는 선생님이 못마땅했다.

유난히 새 정부 출범 초기에만 상생활동을 몰아서 하는 기업들을 보면 학창시절 선생님이 떠오른다. 물론 알아서 기업들이 상생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면 지속되기가 힘들다. 정권 초기에 바짝 눈치보기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강갑봉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연합회장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유통 대기업이 상생을 외쳤지만 상생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 나온 조치들도 여론 선전이나 주변 상인을 현혹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눈치껏 하는 상생'이 아닌 '지속가능한 상생'이 가능하게 하려면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기업들의 자유로운 이윤추구 활동마저 옭아매는 '규제'는 없애야 한다. 모범이 될만한 상생정책을 펴는 기업들에는 인센티브도 줘야 한다.

유통업계에 악재가 겹치고 있다. 내수침체가 수년간 지속되는 가운데 그나마 내수침체를 메워줬던 유커들도 사드 보복으로 올 들어서는 급감한 상태다. 대형유통시설에 대한 출점규제로 성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이 때문에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아예 올해 신규 출점 계획을 접었다.

유통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내수와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주말휴무제를 더욱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가장 중시하는 고용확대를 가능케 하려면 오히려 주말휴무제 등을 과감하게 손볼 필요가 있다.
대형마트가 주말에 쉰다고 해서 전통시장으로 수요가 이전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이미 증명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상생정책을 펴려면 계속 성장을 하고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각종 규제로 성장을 방해하면서 상생을 강요하는 한 정부 출범 초기에만 눈치보기로 '상생'을 흉내내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생활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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