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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일자리, 장벽을 쌓는 자는 망한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1 17:08

수정 2017.06.21 17:08

[fn논단] 일자리, 장벽을 쌓는 자는 망한다

노벨상 후보에 거론되었지만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아깝게 수상의 기회를 놓친 맨슈어 올슨(1932~1998)이란 경제학자가 있다. 그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이익집단 행동원리를 규명했는데 오늘날 한국 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에 이익집단의 지대 추구행위(rent seeking)라고 답했다.

경제가 성장해 감에 따라 이익집단들이 생겨나고 그들의 집단행동으로 생긴 이익(지대)을 나누는 분배연합이 형성된다. 이익집단들은 담합해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막아 자신들의 이익(지대)을 최대한 많이 챙기려 한다. 지대 추구가 만연하는 국가나 사회는 혁신이나 경쟁의 원리가 잘 작동되지 않는다.
로비로 규제를 만들거나 집단행동으로 자신들의 이익(지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고 국가 전체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져 국가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큰 손실을 보지만 이익집단 멤버들은 상당한 이익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지대 추구도 지속될 수는 없다. 국가가 동맥경화증에 걸려 쇠퇴해버리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분배연합이 판치는 국가나 사회는 종국에는 망하게 된다는 명제를 규명한 올슨의 경구에 귀를 기울일 때다.

이익집단에 속한 소수의 사람들(인사이더·기득권층)은 지대 추구로 이익을 챙기지만 집단 밖에 있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아웃사이더)은 손실(희생)을 당하게 된다. 1970년대 말 유럽의 실업률은 경기가 회복되어도 떨어지지 않는 기현상을 보였다. 미국의 현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미국에서는 경기가 회복되면 실업률이 낮아지는 신축성을 보였지만 유럽은 불황 때 한번 높아진 실업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이론이 인사이더-아웃사이더 모형이다. 유럽의 노동조합원들(인사이더)이 임금인상을 고집하고 구조조정에 반대해 아웃사이더인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어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 비정규직 문제, 긴 노동시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위원회도 만들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이 중요한 현안이다. 이 모든 사항들은 기업과 노동조합의 이익이 상충되고 있어 타협이 쉽지 않다. 노사의 이해관계를 타협하겠다는 취지로 1998년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아직까지도 잘 작동되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에선 노사정 대타협이 성공해 일자리와 성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못하고 있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여기서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는 칭기즈칸의 지혜가 필요하다.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발상의 전략과 지대를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
타협이 공생의 길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콘크리트처럼 경화된 이익집단보다는 스폰지처럼 유연한 이익집단이 살아남는다.
독식하는 강성 분배연합보다는 지대를 나누는 연성 분배연합이 일자리 해결의 열쇠이다.

이윤재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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