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통신요금 정책, 왜 서두르나

"나는 선무당이었다. 통신요금을 내리겠다는 공약을 만들어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그것이 5년 내내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통신산업을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었지만 단말기, 유통, 서비스가 얽힌 통신산업을 제대로 알지 못한 선무당이 사람을 잡은 꼴이 됐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통신요금 20% 인하 공약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가 훗날 털어놓은 말이다. 통신요금 인하가 모든 선거의 단골 공약이 되도록 시발점을 만든 그는 "통신요금은 정부가 손대면 안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후회했다.

문재인정부가 22일 통신요금 인하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아직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임명되지 않았는데 한달 반 활동할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정책을 완성해 발표한다고 한다.

너무 급한 것 아닌가 싶다. 앞뒤 순서도 바뀐 것 아닌가 싶다.

주무부처 장관이 임명되고, 산업계와 협의를 거쳐 소비자와 시장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정책의 순서일 듯싶은데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이리 서두르는 걸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풀지 못한 통신요금 인하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급히 가다보니 주변의 조언도 듣지 않는다. 지난 6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를 공론화한 뒤 보름 남짓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통신요금 인하 결정은 성급하게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조언하는데도 귀를 막고 제 갈 길만 간다.

사실 통신요금 인하 정책은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맛있는 사과'처럼 보이지만 5년, 10년 길게 보면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는 '독 사과'다.

한때 영국은 통신의 발원지인 미국과 함께 세계 정보통신기술(ICT)을 주도하는 통신강국이었다. 미국의 AT&T와 영국의 BT가 주력이었다. 2000년대 들어 영국 정부가 BT의 독과점을 해소하겠다며 4개 통신회사 체제를 만들고 각 회사가 4분의 1씩 가입자를 나눠 갖도록 정책을 짰다.

17년이 지난 현재 세계 ICT 산업에서 BT를 주도 기업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영국인들은 요금이 싼 대신 품질은 세계 최하위급인 통신서비스를 쓰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산업도, 국민의 마음도 다 잃었다.

국정기획위가 우리의 새 정부를 영국 정부처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5년 뒤에도 누군가 "나는 그때 선무당이었다"고 후회하는 이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통신요금정책의 순서를 갖췄으면 한다. 시스템이 갖춰진 정부 주무부처가 산업 전체의 큰 틀을 보고 정책을 만들도록 기회를 줬으면 한다.

급히 먹으면 물도 체한다고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