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수명 다한 경자유전

상속 등으로 사실상 사문화.. 쌀농업 합리화에 장애 요인
개헌특위에서 공론화하길
(경자유전 : 耕者有田)

정부가 지난달 국영무역을 통해 미국산 밥쌀 2만5000t을 들여오기로 했다. 여기에 농민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농민들은 그러잖아도 쌀값 폭락으로 울상이다. 그런데 농민 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문재인정부마저 미국산 밥쌀을 수입하겠다니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산지 쌀값은 2013년만 해도 80㎏당 17만원대를 유지했다. 요즘에는 12만7000원 선까지 떨어졌다. 생산비를 감안하면 형편없는 적자다. 정부 보조금(직불금)으로 간신히 연명하지만 이마저도 막다른 골목에 왔다. 쌀값 하락은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 분명한데 정부는 보조금을 늘려줄 수 없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설정한 한도를 모두 채웠기 때문이다. 보조금 한도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농업을 언제까지 세금으로 연명시켜야 하는가일 것이다.

쌀 농업이 빈사 상태에 빠졌다. 위기의 원인이 시장개방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쌀농업 위기의 본질은 시장개방보다는 소비 감소에서 비롯된 측면이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985년에 128.1㎏에서 2015년에는 62.9㎏으로 한 세대 만에 반토막이 났다. 수요가 이처럼 격감할 때는 어떤 산업이라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감산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정책 대응에는 나서지 않았다. 그 결과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 10년 사이에 20% 줄었지만 생산량은 10% 감소에 그쳤다. 그 10%포인트의 갭이 막대한 세금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과잉생산과 쌀값 폭락의 악순환으로 올해 쌀 보조금으로만 2조원 이상이 투입된다. 재고쌀의 가치 하락과 보관비용도 이에 못지 않을 것이다. 생산량을 적정 수준으로 조절했다면 불합리한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었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쌀농업의 합리화를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요인이 있다. 헌법 121조의 '경자유전'(耕者有田) 조항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농지는 농민만 소유하고, 농업에만 사용하라'는 내용이다. 경자유전은 과거 소작제도가 횡행하던 시절에는 자작농을 보호함으로써 경제정의 실현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도시 거주 자녀들에게 농지가 지속적으로 상속됨에 따라 자작농지 비율은 이미 50% 수준으로 낮아졌다. 현재 70세 이상인 고령 농민들이 조만간 은퇴하면 이 비율은 수년 안에 40%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다. 경자유전의 이상은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빠르게 사문화하고 있다. 긍정적인 기능은 발휘되지 못하는 반면 부정적인 기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장 시급한 쌀의 감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장기적으로는 도시 자본의 농업 내 유입을 차단해 농업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소비량 격감으로 쌀이 남아도는 데도 과잉생산을 해 매년 수조원의 세금을 허비하는 불합리는 고쳐져야 한다. 더 이상 농민들에게 쌀농사만 지으라고 권장해서는 안 된다. 경자유전이 쌀농업의 과잉생산을 존속시키는 명분일 수는 없다.
농민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국회 개헌특위가 19일 재개됐다. 농업과 농민의 발목에 경자유전의 족쇄를 계속 채워두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