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한·미 FTA 재협상 논의

트럼프 대통령의 "America First" 구호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착수, 기후변화협약 탈퇴 등 액션으로 이어졌다. 세계 제1 경제대국이며 초강대국인 미국이 이러니 지구촌에 새로운 사조가 대두되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과연 세계가 자급자족과 각자도생의 오타키(Autarky)로 돌아가서 20세기 초 근린궁핍화정책이 다시 대두될 것인가. 속단이라고 믿고 싶다. 미국이 다자주의를 버리고 일방주의로, 자유무역보다는 소위 공정무역을 들고 나오고 보호주의적 조치를 취하는 빈도가 잦아지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해서도 심상치 않은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유세 중에 한·미 FTA를 "Job Killer"라고 했고, 지난 4월에는 끔찍한 협정이기 때문에 재협상하거나 종료해야 된다고 언급했다. 모든 조약, 협정, 사적 계약에도 발효, 개정, 종료 등의 조항을 둔다. 그러나 이런 조항들이 인용돼 실제로 개정하거나 종료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한.미 FTA의 경우, 이행되는 과정에서 중대한 위반이 있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소소한 문제는 협정에 내장돼 있는 양측 간 협의 채널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위반이 다수 있거나 되풀이된다면 문제는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그간 세간의 관심이 될 만한 이슈는 없었다. 둘째, 10년 전 협상 당시에 미처 예견하지 못한 분야, 예를 들어 최근 각국 산업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바일 경제 또는 디지털 데이터의 활용 등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면 양측이 그 분야에서 협력 강화를 위해 개정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라면 환영할 일이다. 셋째, 발표 이후 5년 동안 양국 교역 관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보아야 한다. 지면상 조목조목 나열할 수는 없으나 크게 보아 그간 세계 교역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양국 간 교역은 늘었다. 수입시장에서 상대국의 점유율이 공히 증가했다. 우리 시장에서 미국 상품의 점유율 증대(8.5%→11%)가 미국시장에서의 우리 상품의 점유율(2.6%→3.4%)보다 큰 상승을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 수출이 상대적으로 크게 증대한 것은 미국시장이 우리보다 4배 이상 크므로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FTA를 체결한 19개국 중에 양측이 공히 뚜렷한 혜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한·미 FTA의 경우가 단연 돋보인다. 그럼에도 단순히 무역적자 규모가 커졌다는 것을 문제 삼아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이야말로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만을 따진다면 중국, 독일, 일본 등과의 대규모 무역적자는 어떻게 할 터인가? 보통, 경제가 어려워지면 보호주의 유혹이 고개를 든다. 그러나 지금 미국 경제는 선진권 중에서 가장 견실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실업률은 기록적으로 낮다.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금리인상도 진행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 경제는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수지의 인위적 조정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곧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북핵 문제와 사드 등 동맹 유지, 강화 의제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런 와중에 통상 문제가 자칫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된다. 이번에도 많은 기업인들이 동행한다고 보도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크고 개방된 미국시장을 잘 관리하기 위해 무슨 공이라도 들일 수밖에 없다. 정부 간의 통상분야 협의에서는 단기적이고 일방적인 처방보다는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 경제에 공히 도움이 되는 협력방안을 찾아야 한다. 많은 국민의 삶은 정치가 아니라 시장에 있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