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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녹실회의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2 16:56

수정 2017.06.22 16:56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지지부진했다. 그것을 본궤도에 올려 놓은 이는 1964년 부총리에 취임한 백상 장기영이다. 상업차관을 끌어들여 화학.시멘트 등 대규모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 시절 서울 세종로 경제기획원 3층 부총리실 한편에 자그마한 회의실이 있었다. 장 부총리는 여기에서 관련 장관들을 불러 모아 중요한 정책들을 사전조율하는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실의 집기와 양탄자가 모두 녹색이어서 '녹실(綠室)회의'로 불렸다.


회의는 사전 예고 없이 오후 7시에 소집되곤 했다. 장 부총리는 자신의 의사가 관철될 때까지 장관들을 물고 늘어져 회의가 심야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바람에 '불도저 부총리'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1986년 경제기획원이 경기 과천청사로 옮겨가면서 부총리 집무실의 집기와 양탄자 색깔이 달라졌지만 계속 녹실회의로 불렸다. 녹실회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회의 멤버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추가됐다. 회의 장소도 부총리실에서 청와대 서별관으로 바뀌었다. 회의 이름도 청와대 서별관회의로 대체됐다. 청와대 서별관회의는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특혜지원을 결정했다가 말썽을 빚었다. 이로 인해 경제에 대한 정치논리의 개입 창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주요 경제정책을 사실상 결정하는 자리임에도 회의록도 없고 진행 과정도 비공개여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녹실회의도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 비공개 회의인 데다 장 부총리의 불도저식 회의 운영이 부처 간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경제현안은 '부총리 중심으로, 경제논리로 푼다'는 것이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첫 회의를 열었다.
장 실장은 J노믹스를 주도하는 여권 내 실세이자 나이도 연상이지만 김 부총리를 깎듯이 예우했다. '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논리로 푼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 뜻이라면 새 정부도 녹실회의의 전통을 이어 갔으면 싶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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