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완장'과 '소통'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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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이란 사전적 의미는 자격, 지위 등을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띠를 말하지만 통상 우리 사회에서 '완장'은 권력을 쥐고 자기 입맛에 따라 휘두른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이 때문에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새로운 권력을 '완장 권력' '점령군'으로 비유하곤 한다.

청와대와 인접한 서울 효자로 금융감독원 연수원은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지난달 말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시민단체, 노동단체 등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통신요금 인하' 등 다양한 요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그 이유는 새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추진할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이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정권 인수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으로 새 정부가 인수위를 꾸릴 시간도 없이 출범하면서 그 업무를 국정기획위가 맡아서 하고 있다. 특히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라는 점을 의식하듯 국정기획위 김진표 위원장은 출범 당시 "혹시라도 완장 찬 점령군으로 비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촉박한 기일 내에 무리하게 성과를 내려다 보니 해당 정부부처, 기관, 기업들에 완장 찬 점령군의 모습으로 비쳐졌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통신요금 기본료 1만1000원 일괄폐지 공약이다.

지난주 국정기획위는 25% 요금할인을 비롯해 저소득층 추가 요금감면 확대, 보편 요금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통신요금 인하대책을 발표했지만 기본료 폐지는 장기 과제로 넘겼다. 국정기획위는 "기본료 폐지보다 할인율을 올리는 게 통신수요자에게 더 큰 후생 증대 효과가 있다"며 "임기 내 공공 와이파이 및 보편요금제 도입 시 연간 4조6000억원의 경감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동통신사, 시민단체 등 어느 한 곳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당장 통신업계는 연간 5000억원 이상의 매출감소가 예상된다며 법정공방을 예고했으며 시민단체들은 "확실한 통신비 부담 완화방안인 기본료 폐지를 결정하지 못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며 이번 대책은 이명박정부 당시보다도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부정적 평가가 나오는 데는 국정기획위가 '소통'보다는 '완장'을 앞세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달 초 국정기획위 최민희 통신부문 자문위원은 미래과학기술부가 통신료 인하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대안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며 시간을 정해놓고 새로 임명된 미래부 2차관에게 사실상 공약이행 방안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결론을 위해 서둘러 성급하게 결정해 잘못된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김진표 위원장의 충고를 국정기획위 관계자들이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
hjkim@fnnews.com 김홍재 금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