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다시 소연정을 제안한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6 17:38

수정 2017.06.27 09:57

일자리 추경 오리무중
여당 사령탑 우원식 눈물.. 권력 안 나누면 '울보'될 것
[곽인찬 칼럼] 다시 소연정을 제안한다

대선 뒤 나는 '소연정 한번 해보라'는 칼럼을 썼다. 성공사례로 밖에선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안에선 김대중 대통령을 들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한국 정치가 연정을 수용할 만큼 땅이 기름지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대통령은 내각을 온통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있다.

잊고 있던 소연정을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새삼 일깨웠다.
그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주엔 야당 파트너들을 만나 11조짜리 추가경정예산 처리에 협조를 구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그리곤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신세한탄이 심금을 울린다. 연합뉴스(6월 22일자)를 인용해 보자. "'제가 정말 한 달 동안…'이라고 말하고선 감정이 북받쳐오는 듯 눈시울이 붉어져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누가 우 원내대표를 울게 했을까. 정권을 뺏긴 자유한국당은 꿈쩍도 안 한다. 바른정당도 야당 노릇에 재미를 붙인 듯하다. 뿌리가 같다지만 국민의당도 고무도장이 아니다. 우 원내대표는 추경 문제에서 '뒷짐'만 지는 국민의당에 대해 "섭섭하다"고 말했다. 세 야당을 합하면 총 167석(107+40+20석)이다. 본인 말마따나 "을도 이런 을이 없다."

추경뿐일까. 문재인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 국회는 어깃장을 놓게 돼 있다. 협치? 정치 속성을 아는 이들은 속으로 웃는다. 정치는 격투기와 비슷하다. 상대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파운딩을 멈추지 않는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라. 벌써 한 명은 낙마했고, 두어 명도 위태롭다. 새 정부가 으레 치르는 통과의례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이건 이등병 신고식이 아니다. 20대 국회 내내 국민들은 지긋지긋한 청문회 쇼를 보게 될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처럼 압승을 거두지 못하는 한 말이다. 아뿔싸, 21대 총선(2020년)은 3년이나 남지 않았는가.

입법부 기반이 약한 대통령은 법률 아래 영(令) 또는 고시로 통치한다. 임기 말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랬다. 불법이민자 수백만 명을 구제할 때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를 비껴가는 전략이다. 그러나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바뀌면 바람 앞 촛불 신세가 된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오바마 명령을 원위치시키는 반이민 행정명령을 잇따라 냈다.

문재인정부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 지난주 새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통신료 인하안을 내놨다. 요금 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올리는 게 골자다. 그 근거가 미래부 고시(告示)다. 그러자 대뜸 고시가 상위법인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곧 단통법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단통법(6조)은 요금할인을 단말기 지원금에 상응해서 주도록 했다. 그런데 요금을 25%나 깎아주면 되레 지원금보다 혜택이 커진다는 것이다. 고시에 의존하는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가 법을 바꾸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은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장면이다.

문 대통령에게 다시 제안한다. 소연정 한번 해보라. 미우나고우나 국민의당만큼은 손잡고 같이 가라. 두 당을 합하면 160석(120+40석)이다. 국회 선진화법 60% 룰엔 걸리지만 그래도 과반수가 어딘가. 협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권력 분점이 출발점이다. 국민의당에 요직 몇 자리는 양보해야 한다.
쉽지 않다는 거 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권력을 움켜쥘수록 더 큰 걸 잃는다.
이대로 가면 우원식 원내대표는 울보가 될 수밖에 없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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