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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장진호 전투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7 17:16

수정 2017.06.27 17:16

1950년 11월 말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를 점령하고자 진격하던 미 1해병사단 1만5000명이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長津湖)에서 매복 중인 중공군 7개 사단 12만명에게 포위당했다. 몸도 식량.무기도, 심지어 부상병에게 쓰는 수혈관과 모르핀조차 꽁꽁 얼어붙게 하는 영하 40도의 혹한은 중공군보다 무서운 적이었다. 병사들은 동상에 부르튼 손과 발을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고 10배나 많은 중공군의 기습공격에 맞서 혈전을 벌였다.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간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은 4500명을 희생한 끝에 적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는 영어로 'Chosin Few Battle'이라 부른다. Chosin은 장진의 일본식 표기이며 Few는 미 해병대 생존자가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얼마나 처절한 전투였는지 짐작이 간다.

미군 전사에 장진호 전투는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된다. 그러나 패전이면서도 승전보다 더 영광스러운 전투였다. 미군의 분투에 2만5000여명이 전사하는 궤멸적 타격을 입은 중공군은 남진을 2주 이상 지체했다. 결국 미 해병의 값진 희생 덕에 나머지 병력과 피란민 10만여명은 흥남을 통해 무사히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또한 장진호 전투는 연합군의 일방적 패퇴 상황을 반전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이 전투가 2차 세계대전 때 모스크바 전투, 레닌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겨울전투이자 6·25전쟁 3대 전투로 꼽히는 이유다.

흥남철수를 가능하게 한 장진호 전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는 1950년 12월 22일 흥남철수 때 7600t급 상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승선했던 피란민이었다. 문 대통령은 부모가 이 배를 타고 피난 온 2년여 뒤인 1953년 1월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28일 미국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하는 것을 첫번째 일정으로 잡았다고 한다.
그의 개인사와 맞물려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는 한.미 양국이 왜 피를 나눈 동맹관계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문 대통령의 방미가 두 나라의 우정과 신뢰를 재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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