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기업개혁, SK처럼 먼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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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은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이다. 하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의욕만 앞서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벌개혁에 성공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장담했지만 취임 석달 만에 빛이 바랬다. 2003년 6월 총수들을 만나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하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반년 뒤인 2013년 8월 10대 그룹과 만나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정부정책이 경제민주화에서 경제활성화로 급선회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재벌개혁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개혁실패를 "경제에 자신이 없다 보니 재벌과 관료에 포획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인선 배경이다. 이들은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이면서 기업 전문가다. 전문성과 합리성뿐 아니라 현실감각까지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부작용과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의도다.

주목할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신설된 청와대 정책실 산하 경제보좌관(차관급)에 임명된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다. 몇 안 되는 일본 기업.경영 분야 권위자다. 도요타.캐논 등 일본 대표기업은 물론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텔레콤 등에 자문을 해왔다.

김 보좌관은 기업과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2015년 11월 국회 최고위 경제강의에서 "포퓰리즘 정책을 양산하면서 기업에 부담을 전가하면 기업들이 한국을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져 결국 자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1990년대 일본 정부는 재정을 메우기 위해 기업에 40% 법인세율을 적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니가 삼성 때문에 쓰러졌다고 하지만 소니는 일본 정부가 무너뜨린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재벌들이 긴장하면서도 합리적 개혁을 기대하는 이유다. 지난주 김 위원장과 4대 그룹의 만남이 이를 증명한다. 정진행 현대차 사장은 "더 이상 정부 정책에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듯하다. 안심하고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변화에 소극적이었다. 총수 일가의 편법승계, 일감 몰아주기, 형제간 재산다툼, 기술탈취 등 불법과 편법으로 반기업 정서를 자초했다. 오죽하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하청 중소업체가 정책자금을 받으면 대기업들이 이를 알고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빨대 효과'가 나타난다는 보고서를 냈을까.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전경련의 몰락은 반면교사다. 그런 측면에서 SK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최태원 SK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개방.공유형 경제에서는 기업 자체의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10년 내 사회적기업 10만개를 만들자"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기부.자선 같은 소극적 수준에서 벗어나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다. 기업 스스로 바뀌겠다는 신호탄이다. 개혁은 강요보다 스스로 해야 효과가 크다.
시기도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을 듯하다. 기업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경제 컨트롤타워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기업은 정부에 요구할 건 당당히 요구하고, 들어줄 건 들어줘야 한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