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논단] 역지사지(易地思之)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8 17:39

수정 2017.06.28 17:39

[fn논단] 역지사지(易地思之)


티켓 판매창구 표지판 글은 '표 파는 곳' '표 사는 곳' 중 어느 것이 맞을까. 출입구 표시는 '들어오는 곳' '들어가는 곳' 중 어느 쪽이 옳을까. 둘 다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손님 입장에서는 '표 사는 곳' '들어가는 곳'이 맞다. '표 파는 곳' '들어오는 곳'은 주인 입장에서 맞는 표지판 글이다. 고객이 왕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글귀 하나도 서로 다른 경우를 가끔 본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바꿀 易(역) 처지 地(지) 생각 思(사) 어조사 之(지)이다. 이 사자성어가 오랫동안 회자되는 것은 아마도 이 말이 주는 교훈은 큰 반면에 이를 지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맹자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처지가 바뀌어도 모두 그러하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 대립되는 의미다.

필자가 은행장으로 있을 때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한 말이 있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이다. 고객을 유치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의 욕구를 포착한 연후에 그 고객에게 어떤 상품,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고객은 은행 내부규정이나 프로세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은행원이 흔히 쓰는 용어도 고객이 들으면 생소하고 어렵게 들릴 수 있다.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자기에게 맞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직원을 찾게 된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임에도 하루아침에 변화를 가져오기는 쉽지 않았다.

가끔 혼인 주례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거절할 수가 없어 덜컥 승낙을 해놓고 어떤 덕담을 해야 하나 걱정이 되곤 한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단골 메뉴가 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이다. 배우자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릴 때 숨 한번 크게 쉬는 잠깐 동안만 왜 화를 낼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당부한다. 이러면 대부분의 다툼이나 오해는 사라진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데 상대방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맞대응하는 데서 많은 갈등이 비롯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인천시에서 역지사지 운동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공직사회의 부처 간, 개인 간 이기주의로 인한 문제점이 많다는 판단에 따라 직원들로 하여금 시민의 입장에서 행정서비스를 해나가자는 캠페인이었다. 이런 운동이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성과를 얻기가 어렵지만 사회 전반에서 꾸준히 추진해 나간다면 역지사지 태도가 몸에 배어서 이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익집단이나 공동체 간의 갈등이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이 강도가 커지고 오래 지속된다면 우리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것은 자명하다.
이를 모두가 깨닫고 역지사지의 정신을 조금씩 발휘해 나간다면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올 것으로 본다.

이종휘 전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