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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EU의 마피아 국가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30 17:30

수정 2017.06.30 17:31

[세계 석학에 듣는다] EU의 마피아 국가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중부·동부 유럽 국가 중 상당수는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안정적 이동을 희망했다. 그 여정에서 어떤 장애물도 극복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많은 옛 공산국가에서는 유착과 부패라는 낡은 시스템이 여전하고, 이는 또 다른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헝가리를 예로 들어보자. 헝가리는 빅토 오르반 총리 통치 7년 동안 마피아 국가가 됐다. 헝가리는 독특하다. 노선을 바꾸고 독재로 향하기 전에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했고,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구소련 인근 지역의 다른 마피아 국가들은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부침을 거치거나 공산 독재에서 범죄기업으로 직접 전환되는 두 가지 경로를 거쳤다.

이들 국가에서는 올리가르히와 지하세계 조직이 국가를 장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트로 구성된 '상층세계' 조직이 올리가르히 자신들을 포함, 경제를 장악했다. 그 결과는 범죄조직과 민영화된 기생충 같은 국가의 조합이다.

현재 마피아 국가들에선 주요 의사결정이 공식 기구를 통한 것이 아니라 정권이 만들어낸 비공식 메커니즘을 통해 이뤄진다. 구조와 문화라는 면에서 이는 입양가족과 닮았다. 정권이 체계적인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교체를 통해 창출된다.

민주주의에서는 이런 엘리트들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마피아 국가에서는 그들의 위치가 후견인 시스템 속에서 결정된다. 전통적 마피아식 신체적 강제는 공공기관의 감독을 받는 냉혈한적인 '법적' 강제로 대체된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같은 EU에 가입한 옛 공산국가들에서도 부패가 고질병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적절한 선거시스템이 있고, 권력분산 역시 이뤄져 어떤 중앙집중화된 후견인 네트워크도 부상하지 않았다.

폴란드의 광신적 이데올로기 지도자인 야로슬라프 카진스키와 달리 오르반은 냉소적이다. 오르반이 헝가리에 세우려고 하는 독재체제 형태는 그 이데올로기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카진스키의 폴란드 체제와도 매우 다르다. 오르반 정권이 공식 기관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통제하는 입양된 정치 패밀리를 통해 지속되는 것과 달리 카진스키는 권력에 대한 갈구뿐만 아니라 그만큼 강한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보수 독재 실험을 하고 있다.

2010년 헝가리 의회 선거에서 오르반의 헝가리시민동맹(Fidesz·피데스)당은 53%를 득표했고, 국회 의석 386석 가운데 263석을 차지했다. 오르반은 이 강력한 지위를 이용해 헌법 개정에 나섰고,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을 그의 권력을 감시했을 기관들에 투입했다. 또 선거법을 조작해 자신의 통치를 강화했다. 2014년 총선에서 피데스는 재집권하는 데 44% 지지만 있으면 됐다.

오르반의 마피아 국가는 뒤집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피라미드식 후견인 네트워크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만든 것과 비슷해서 난공불락에 가까워 보인다. 주목할 것은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체제가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혁명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오르반이 헝가리 선거를 조작할 수 있는 한 그를 투표로 권력에서 쫓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피데스는 검찰을 당의 일부로 전환시킴으로써 사법부와 정치화된 법 집행기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왔다. 나아가 대부분 신문과 라디오 방송은 이제 오르반과 가까운 올리가르히들이 소유하고 있고, 국영TV는 정부 선전기구로 전락했다.

EU가 추구하는 공동가치들은 헝가리에서 치명적으로 약화됐다. 그러나 지금껏 EU는 오르반 정권에 대한 심각한 제재를 꺼려왔다.
헝가리가 러시아에 더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EU는 암묵적 '다중 속도 유럽' 정책을 통해 독재에 가까운 중.동유럽 회원국에 대해서도 인내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오르반은 이제 자신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비자유 민주주의'를 통해 '동방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헝가리 작가 밀코스 하라스치가 지적하듯 헝가리는 '동풍의 힘을 받아 서방의 보트를 타고 표류하고 있다'.

발린트 마자르 사회학자·전 헝가리 교육부 장관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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