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조선시대 늙은 신하의 나라사랑

지령 5000호 이벤트
"그대가 소외된 보잘것없는 관리로서 이렇게 40여 조항의 경륜의 말을 전하였다. 위의 아홉 조항은 모두 마음과 몸에 절실하고 긴요한 것이었으니, 깊이 생각토록 하겠다. 열 번째 조항 이하는 조정으로 하여금 하나하나 심의하여 답하도록 하겠다." 정조4년(1788년) '국조보감'에는 우정규(禹禎圭)라는 칠순의 통례원 신하가 45편에 이르는 국가개혁안을 책으로 엮어 정조에게 올리자 왕은 이를 칭찬하여 좋은 활을 하사하며 조정에 명했다고 적혀 있다.

통례원은 국가의 의례, 의식을 주관하는 기관으로 임금께 정책을 진언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그는 일생의 생각을 정리하여 과감히 왕에게 진언한 것이었다. 1718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우정규는 생원시에서 빼어난 성적을 보여 왕으로부터 궐안에서 보는 특별시험에 나오라는 명을 받고 정시 문과에 급제했다. 예문관 검열이 되었지만 출신 가문이 변변치 않으니 벼슬과 품계를 빼앗으라는 탄핵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중앙의 요직에 오르지 못하고 지방직을 거쳐 통례원의 우통례가 되었다.

그가 정조에게 올린 정책제안인 '경제야언(經濟野言)'의 첫 9편은 임금이 가져야 할 도리로 마음을 바르게 할 것, 학문에 힘쓸 것, 어진 이를 임용하고 친척을 멀리할 것 등을 열거했다. 나머지 36편에는 붕당파타, 과거제 등 교육 개혁에서 도성방어, 수군모집 등 국방력 강화, 토지세, 부역, 환곡, 어장세 등 세제 개혁, 화폐통용, 은광허용, 해운, 왜국교역을 위한 인삼품질관리 등의 경제 개혁, 서북도 출신 소통 방안, 부인머리 꾸밈새를 바꾸자는 논의, 함양 등 지방을 복구하는 방안 등 민생에 관련된 각종 정책을 망라하여 개선책을 제시했다.

'경제야언'이란 책 제목은 지금의 경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경제에 대한 놀라운 식견을 보여주었다. 화폐를 통용시키라는 화폐경제의 도입, 은광 개발에 민간의 활력을 활용해 유휴노동력을 활용하라는 제언, 제조자 품질을 관리하라는 제언 등은 현대경제학의 관점에서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다.

더욱이 우정규는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던 명문가 출신이 아니었다. 관직마저 주로 지방 한직을 돌았기 때문에 서울의 다른 학자들과의 교류도 별로 없었다. 다른 실학자들처럼 중국 견문을 넓힐 기회도 못 가졌다. 그런 까닭에 그의 사망 연도마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떻게 향촌 출신 관리가 이런 놀라운 제안을 할 수 있었을까. 우정규는 순자의 '부국편'이나 율곡 이이의 부국안민 사상을 포함한 유학 고전을 충실히 공부했을 것이다. 또한 지방의 수령으로 실제 지방에서 서민들과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승정원일기'에는 당시 왕명에 따라 이루어진 답신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비변사는 단순히 폐단만 보고 좋은 법제는 없는 '매우 혼란스럽고 조잡한 글'이라고 보고해버린 것이다. 단지 여성의 머리장식을 검소하게 하자는 방안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며 대부분 무시했다.
그리고 이 일은 오랜 기간 묻히고 말았다. 심지어 20세기 초, 정약용 등 실학자들이 재조명받던 시기에도 주목받지 못했다. 다행히 규장각에 한 권 남아 있던 이 책의 번역본이 1973년 나옴으로써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호철 한국IR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