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이주열의 다른 생각

1년전 소득주도성장론 펼쳐 새 정부와 정책조화 이룰 듯
일자리 확대 측면지원 기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얼마 전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기자간담회에서 어느 기자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등이 이 총재의 그간 소신과 다르지 않으냐"고 물었을 때다. 이 총재가 이끄는 한은의 통화정책은 J노믹스(문재인정부 경제정책)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대답은 예스다. 나는 이 총재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문재인정부가 출범하기 1년 전에 이미 소득주도성장론을 설파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한은이 국제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 총재가 개회사를 했는데 그 내용이 뜻밖이었다. 그는 "가계소득의 원천이 되는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총수요 증대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 확대→가계소득 증가→소비 활성화→투자 확대→ 총수요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당시 박근혜정부의 정책보다는 야당의 소득주도성장론에 가까웠다. 정권 입장에서 보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한은 총재로서가 아니라 학술행사에서 나온 학자적 의견 표시로 인식되는 분위기여서 별 탈 없이 넘어갔다.

그는 왜 정권과 '다른 생각'을 표출했을까.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은 '규제개혁→기업투자 확대→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업투자가 성장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투자주도성장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총재도 박근혜정부 경제팀 일원으로서 여기에 공동보조를 취했다. 다섯 번이나 금리인하를 단행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까지 끌어내리는 모험도 감행했다. 이 정도면 공동보조를 너머 거의 필사적으로 정부를 지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은 데서 오는 자괴감, 필사적인 지원 노력이 성과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등이 맞물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그는 성장과 임금 사이의 불균형 문제도 지적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최근 5년(2012~2016년) 동안 연평균 2.82% 성장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상승분을 빼면 실질임금은 연평균 2.46% 상승하는 데 그쳤다. 경제규모가 커지는 만큼 임금이 오르지 못했다는 얘기다. 분석기간을 2000년대 이후로 확장하면 불균형은 더욱 확연해진다. 2000~2016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18%였지만 실질임금 증가율은 2.52%에 그쳤다. 성장과 임금 사이의 불균형은 1997년의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급증했으며 이것이 전체 근로자의 실질임금 증가율을 낮추는 요인이었다.

오르지 못한 임금은 기업에 사내유보금으로 쌓였다. 기업은 여유자금이 풍족했지만 가계는 빚에 쪼들렸다. 가계소득 정체 상태가 장기화할수록 소비부진이 심화됐다. 물건이 안 팔리면 기업이 투자를 늘릴 이유도 없다. 경제는 점점 회복력을 잃어갔다. 박근혜정부 4년간 가계빚은 400조원이 늘고, 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았다.
문재인정부는 136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저성장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총재는 두 가지 모두 가계소득 증대로 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총재 임기는 9개월 남았다. 그의 '다른 생각'이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